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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 돼지 전설 ㅣ 마음이 자라는 나무 31
창신강 지음, 왕주민 그림, 전수정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중국인이 저자~
제목도 특이하다.
돼지가족들~!! 형제들? 증조모인 할머니와 부모 그리고 형제도 많은 대가족이다.
여러가지 예측불허 사고뭉치 가족들의 일상을 살피며
피식 웃음도 나고 한 편으론 눈살도 찌푸려지기도 하고~~
여튼 사람아닌 돼지 가족의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통해
사람의 삶을 엿볼수 있는 듯 하다.
끝없을 듯 하늘 높은줄 모르는 인간의 욕심을 돼지를 의인화해서 그들의 주특기인 식탐으로 구구절절 세심하단 딘어가 무색하고 구차한듯 싶을정도로
표현하고 있다.
1> 형제들 중 몇 마리만 거주지 인근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등교한다. 그러나 별다른것 가르치지 않고 교장 이라는 돼지가 다른종족이 돼지를 어찌 표현하는지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등, 돼지 가족 형제들의 기대와 다른 학교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여지없이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들로 판단하고 학교 등교 거부를 표현하게 되는 형제중 한마리가 생기게 된다.
큰형이다. 큰형은 학교 대신 일을 선택하게 되는데.....
여튼 학교 내 교장 선생님이 수업을 이끌며 돼지 학생들과 대화하는 모습에서 이즈음 학교 교실 풍경이 자연스레 그려졌다.
물론, 어떤형태로든지 교육은 필요하고 모든 이들에게 평등하게 기회가 주어져야 하기에 의무교육제도로 학령기 아이들에게 제공되는 점 또한 이해된다. 허나,타당 돼지가족이 살고 있는 시대를 이야기 했을때, 교육을 받아야 하는 주체인 돼지 형제들을 에워싸고 있는 현실도 급변하는듯 하다. 더불어 돼지 형제들이 학교에서 학습할 것들을 기대하는 듯 보이는데(=물론 교육을 받는 사람 입장에서 원하는 대로 무헝식에 근거를 두고 교사가 가르쳐야 하고, 학생들이 수용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논하고 싶지 않다)
다만,아무리 의무교육일 지라도 현실에 맞는 최적화된 교육여건이나 교사들의 수업 지도 계획이나 수업내용들이 함께 변화되어 어우러지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학생들 눈치보고 교권 상실되고 추락되는 무질서가 난무하는 분위기가 선행되서도 안될것이다. 교사중심도 학생중심도 학부모중심도 아닌 중심잡히고 모두를 충족할 수 있는 교육여건이 확립되길 바람은 맨땅에 헤딩하는 일일까?
모두 정해진 시간에 획일적으로 앉아 듣기만하는,일방적 강의를 들어야 하는, 지필고사를 반드시 치러서 결과물을 만들어 순위를 매기는 것을 역사적 사명 쯤으로 임무 완수해야 하는 듯,눈에 쌍심지를 켜고 이행해서 성적표로 기록을 남겨야 하는 작금의 현실들...참 애매모호하고 거시기하다.
5세만 되면, 사교육 시장으로 내몰리게 된다니!! 개인은 디른모습으로 출생하고 삶을 영위하고 죽음을 맞이해야 할 귀한 존재로 세상에 보내진 선물임을 인지하고 있다. 지식적으로 많이 습득하면 보다 나을지모르는,보다 편할지 모르는 삶을 살수 있다손 치자(=이 또한 불분명한 미래일 수 있지 않을까?)
모두의 능력이 다른데 공장에서 찍어내는 상품도 아닌데,악속이나 한듯 학생들은 공부의 노예처럼~부모들은 마냥 돈버는 기계로 밑빠진 독에 물 채우기를 해도 이보다는 수월하지 않을까하는 착각의 늪으로 서서히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린양 미친듯 쏟아붓기만 하면?
2> 큰 형에게 기대하고 있는 할머니의 관심과 사랑이 표현되는 부분 묘사된것이 인상적이다
자녀든 손주든 어른들 맘대로 태어나게 할 수 있음도 아니고 또한 장래나 미래까지 정형화된 틀처럼 천편일률적으로 만들어 낼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되고 그런다 쳐도 모순으로 치닫는 것이 아닌지 싶다.
소위,어른들의 역할기대가 지나친 시선임에도 넘어선 안될 선을 넘어버린 사랑과 관심이란 허울좋은 가식의 덧옷 입음으로 맏이에게 부작용이되어 비수처럼 꽂히는 스트레스의 화살이 될 수도 있지 않나 두려운데
이야기 속 돼지 형제들 특히 맏형에게 표현하는 할머니의 관심은 읽는 독자일뿐임에도
책 속 큰형에게 직접 물어보고픈 말도 안되는 욕구를 치밀어 오르게 하고, 마치 큰형으로 몰입된듯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이 막히는 느낌까지 올곧게 전해지는 듯 했다.
명목상 맏이의 책임감이라는 덧옷이 정작 당사자에게 얼마나 큰 짐이며 부메랑이 되어 후벼 파서 아물지 않는 생채기로 만들어 버릴지 모르는 큰 위력의 소유자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알고서 그리 말을 쏟아붓고 다독이는건지 궁금했다.
3> 돼지를 끌어가기 위해 수단 방법 안가리며 다탕마을의 분위기를 흐려놓는다.
돼지 형제들의 아빠는 그들로부터 몸부림치며 가족들을 보호하려 한다.
뇌리를 스친다. 이즈음 고기를 식용으로 이용하기위해 선진국에서는 동물먹이를 구실삼아 제3세계 빈민이 늘어감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한다.
그뿐이아니다. 방목을 해서 자유롭게 기르는 옛방법으론 실리추구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일까? 여러가축을 기를때 가둬놓고 덩치만 커지게 하는 비인간적 행위를 일삼고 있지않은가?
이 현상을 동물들 시각에서 책 내용처럼 바라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인간의 다스림 아래 존재하는 것이 동물일 수 있겠다. 그렇기에 易之思之를 언급함 자체가 모순일수도....
하지만 책 내용이 동물시각으로 씌어진 점을 감안해야 하기에 적어도 이 순간 만큼 일지라도 입장바꾼 시각에서 잠시라도 생각해야 함에 무게중심을 두려한다.
야만이라는 단어가 이들에게도 통할까? 상상으로 공감할수 있는 느낌이 어느정도인지 가늠할수 없다. 인간이 사육하고 식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해도, 적어도 돼지가 주인공 되어 그들의 시각과 입장을 풀어놓으며 하소연 하는 이 책을 기준으로 삼으면, 씁쓸하다.
단지, 의인화 시켜 풍자했다 할 수 있는 이야기임을 강조하고 싶다.
4>
마무리랄까?
◑ 형제가 많으니까 서로 위로되고 분위기는 좋아 보임을 인정한다.
: 그렇다고 우리나라 이즈음 현실에서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 알 수 없는 분위기인데, 책임소재를 막론하고 (여러 이유가 있을 텐데) 무조건 아이 낳으라고 정책 제시만 하고 많이 낳는 가정에 그것도 테도 나지 않는 주먹 구구식의 혜택 나느기가 과연???
◑◑ 형제들의 모습은 모두 생김새도 특기도 기질도 모두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 개인의 장점을 살려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 인간의 탐욕에 의해 끌려갔던 돼지도 있었고, 스스로 꾀임에 빠져 따라갔다가 고생한 돼지들도 있다. 또한,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건강이 쇠약해서 죽음을 맞이한 돼지도 있다.
◐◐◐◐
꾀임에 빠진 동생을 찾으러 첫째가 나선다.
: 마지막에 찾으러 갔던 첫째는 가출했던 동생을 데리고 온다.
-- 이 부분에서 다시 맏이의 책임? 역할기대?가 돋보이는 듯 해서 안타까웠다.
분명, 힘들었지만, 가출했던 동생을 찾아왔으니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일인가?
그런데, 첫째는 오히려 동생을 구하다 인간의 공격에 의해 팔을 잘린 채로 돌아왔다.
가출했던 동생 돼지는 생각외의 여러가지 모습에 충격을 받아 정신줄을 놓게 되었나 보다.
돌아와서 말한다. 동생이 건강하지 못한 모습으로 데리고 오게 되었다며... 이런 어조로 말
이다. : 지나친 감정 왜곡임을 느끼지만, 참~ 동생이 그렇게 된 것이 첫째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오히려 그릇된 상상에 의해 스스로 걸어 나간 동생의 책임이 더 클지도 모르는 일인데... 아무리 형식적으로 내뱉는 말일지라도 ㅠㅠ 아니지 싶었다.
◐◐◐◐◐
할머니와 어우러져 대가족으로 살아가는 모습도 좋아 보였고, 주인공인 여섯째가 결혼 해서 아이 낳고 잘 사는 모습까지 그리며 마무리 되어 해피엔딩이라 할 수 있을듯 싶다.
글쎄~ 지극히 독단적이고 이기적인 생각임을 먼저 강조하고 싶다.
물론 책 내용의 난이도라는 부분을 도출해서 감안했을때, 동물의 시선으로 의인화되어 표현되는 내용이 근간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만만히 여겨질 정도 일 수도 있을듯 보였다.
또한, 오히려 동물 시선으로 기록되어져 있기에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가늠하기 난해할지도 모르겠다.
이 이야기가 청소년 독자를 대상으로 출간되었음을 인지하고 읽기 시작했다.
한편으론 청소년들이 읽고 난 후 어떤 가치관에 호소하며 수용하길 바람을 담은 것인지
물론, 독자로서 현재 청소년은 아니지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서 부모의 입장에서 청소년의 시각으로 내용이해를 하려 했다.
그럼에도, 책을 읽는 도중에도, 다 읽고 덮은 이후 뇌리를 스치는 그 무엇도 확~ 공감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이런 점이 솔직히 부족한 사견으로 기우뚱 자연스레 반응하는 스스로의 중심잡기를 포기하며
마무리 했다.
그것이 극대화된 편견일지라도 떨칠수 없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