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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 전아리 장편소설
전아리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2월
평점 :
등장하는 다섯명은 자신들의 풋풋한 고교시절의 터널이라는 과정을 지나가야 할 의무와 필요를 알고 흐름에 항해하는 배처럼 순순하게 앞으로 나아가길 바랬을지 모르겠지만,
그들안에 혹시라도 그런 바람이 채워지길 시샘하듯 방해요소라는 예기치 않은 사건들에 엮여 자의든 타의든 속도를 내지 못하고, 답답한 공간이라는 것이 터널임을 알고 있지만, 쉽게 벗어나기는 커녕 오히려 큰 터널 안을 모두 쉽게 벗어나려 생각하는 자체만으로 사치라 여겨질 정도로 큰 사건이 그들앞에 발생하게 되고, 그들은 아름답고 풋풋함이 아닌 뭔가 이상한 기운에 어쩔 수 없이 엮여 버린 관계라는 떨쳐버릴 수 없는 필연적 물체의 강한 힘에 의해 그렇게 성인으로 성장하면서 펼쳐지는 내용을 풀어낸 듯 싶었다.
그 다섯 명이 진철, 재문, 기완, 해영, 유성....이었다.
그들 안에 여학생을 두고, 묘한 감정을 표현하다가 예기치 않게 일이 확대되어 그 사이에 있던 앤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만다. 일명 살인사건이 그것이다.
그 중에 기완이 모든 책임을 감당하고, 벌을 받게되고, 그 기간이 흐른 후에 사회에 다시 나와서 다른 친구들을 만나며 때로는 협박도 하고.. 뭔가 내면에 채우지 못한 것들을 끄집어 내서 보상받으려고 표현하는 것이라고 단정짓기는 2% 부족해 보이지만, 아무튼 친구들 사이에서 뜨거운 감자랄까? (==그들 내에서 암묵적으로 묻어버린 예전의 사건을 언급하며 계속 친구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요구하는 듯 보였는데, 설령 보상을 받는다 해도, 이런 방법으로 표현해서 욕구를 채워야 할까? 내면 심리에 뭔가 왜곡된 친구들 과의 관계 속에서 각인되어진 풀지 못한 것이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스물 피어오름을 느꼈다.)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 상황을 묘사하며 전개 시키는 당사자 해영과... 여학생 주홍의 관계 또한 묘하게 작용을 하는 듯 보였다.
그렇게 한순간 올바르지 못한 상황에 의해 불가불적 관계로 서로 유야무야 특별히 좋은 감정이 아닌 어쩔 수 없는 악연의 고리 같은 것의 힘에 의해 엮이고 있음이 느껴지기도 해서, 좀 오싹했다.
이 책 저자의 책은 이번이 두번 째다. <팬이야>를 우연히 성장소설 속에 포함시킬 수 있다 해서 읽게 되었다. 글쎄, 그때 그 책을 읽었을 때 느낌이 어땠을까? 강하게 남아 있지 않은 것을 보니 그저 그랬나? 아마도, 그냥 다른 성장소설을 출간한 다른 작가들의 시선이나 풀어내는 과정적 전개 방법, 담고 있는 주제와 등장인물들에 의해 펼쳐지는 상황들이 특이했달까? 독특했다는 느낌으로 막연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나쁘다는 느낌도 아닌 이분법 적 분리에 의해 좋다 싫다의 느낌으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것이었음이 아니었나 싶다.
그랬기에 한권으로 저자의 필체나 주관등 판단할 능력도 부족하지만 판단하는 것은 지나침이 아닐까 싶어서 기회 있으면 여러번 접하고 싶은 생각도 함께 담아 두었던 듯 싶다.
아뿔싸~ 성장소설이라기 보다 뭐랄까? 예전의 작가의 그런 필체와는 전혀 다른 느낌? 뭔가 가득 채워 있는데 그 위에 뜨개질 할 때 굵지 않은 밝은 채도가 아닌 그런 실뭉치가 엉망이 되어 놓여 있어서 그 내용이 보이긴 하는데, 뭐라 단정지을 수 없고, 표현하자니 정확히 본 것이 아니어서 확언하기 힘든? 물론, 그 뜨개실을 들어서 옆으로 걷어 두고, 안을 들여보라고 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다시 강조하지만, 책 내용이나 저자의 관점의 시시비비를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나라는 독자에게 전해진 느낌? 그 자체를 말하려 하는 것 뿐이다.
저자 전아리는 작가의 말에서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초조하게 달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이 이 책을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라고 기록한 것을 발견했고, 또한 같은 구절이 책 뒷면과 뒷면의 띠지 위에 촘촘히 적혀 있음을 확인했다.
개인적으로 어렴풋하고 성숙되지 못한 심리 관련 편협적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저자 말한 대로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초조하게 달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이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했고, 더불어 관계와 비밀에 관해 담아내었다고 서술한 부분을 눈으로 확인하고 생각이라는 개인적 의지의 산물을 첨가해 노력하려 했지만, 쉽게 나라는 독자에겐 책 내용이나 저자의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올곧게는 커녕, 그 일부분도 담아내지 못했던 듯 해서 아쉬웠을 뿐이다. 한번도 초조하게 달려 본 경험이 없어서였을까? 아님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그냥 식상할 정도로 어른이라는 편협한 시각을 소유할 수 밖에 없다는 합리화에 묻어버려야 하는 걸까?
또한, 저자는 앞으로 간절한 사람에 대해 글을 쓰고, 그런 내용을 다루고 싶었다 한다.
그렇다면, 이 책 한권으로 느낌을 단정짓는 것이 아닌, 다음 책 출간을 기대해 보고, 그 책을 읽은 후의 전해지는 느낌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경험을 마주한 후로 저자의 책을 대하는 개인적 느낌을 정리하는 시간으로 미루어 두어야 하는 걸까?
자문을 해보지만 스스로 해 놓은 질문이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선뜻 답을 하지 못하겠다고 조심스레 되뇌인다.
하지만, 편협될 수도 있는 개인적 관점을 떨쳐 보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시간으로 채울 수 있었던 듯 싶어서 그 자체로 만족하고 싶었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