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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탈진 음지 - 조정래 장편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7월
평점 :
조정래 선생님의 매력에 빠지는 느낌이다. 예전에 접하고 한동안 개인적으로 쉽게 접하기 어려워 손을 놓고 있었기도 했다. 최근 황토를 용기내어 읽고 비탈진 음지의 재 출간 소식으로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선생님의 여러가지 면을 감히 다 공감하지 못하고 판단할 수 없겠지만, 쉽게 읽히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고, 또한 책을 덮고 나서는 여러가지 생각이 잔잔하게 머리에 남아 기억되는 느낌을 전해 받을 수 있으니 이 사실로도 행복한 책읽기 였다고 자신하고 싶다.
황토가 암울했던 우리네 시대를 살아가는 여인들의 이야기 였다면 비탈진 음지는 그 시대를 전후로 살아가던 선생님 표현을 빌어 오자면 「무작정 상경세대」를 살아가는 가장들 즉 남성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어 보였다.
주인공 아버지도 역시 서울 아닌 지방 소도시에서 살다가 생활고에 시달리며 힘들게 버티고 있었다. 가장이었고, 남자였기에.. 하지만, 이에게도 버틸힘은 점차 고갈되어 가고 있었고, 그 시대를 아우르는 서울로의 상경을 감행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적어도 무슨 일을 해도 서울에만 가면 입에 풀칠은 하겠지 하는 생각이었나 보다.
큰 아들이 집을 나가버리고, 자녀 둘을 키우며 근근히 녹녹하지 않았던 삶을 꾸려 가던 중에 아내도 불치의 병을 얻어서 시름시름 앓다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되었으니 그 마음이 오죽했을까?
"부부가 살다가 남자가 먼저 죽어야 해."라는 말을 솔솔찮게 들어본 적 있다. 아무래도 여러가지 기질 상 남성들 혼자 삶을 살아가긴 쉽지 않게 애초부터 만들어졌나 보다. 예전 주인공 살던 시대도 그러했으리..
무작정 거의 야반도주격으로 자녀들 이끌고 올라온 서울의 하늘
여의치 않았다. 우연히 만난 노상의 떡집 아줌마가 동향임을 우연히 알게 되어 맘을 터놓고 지내게 된다.
이것저것 살뜰히 챙겨줬는데.. 그 옛날 없던 시절에 방 두칸이 무슨 말이고, 연탄 없이 난방이 안되었으니 이 떡 팔던 아줌마 가족은 한방에서 연탄가스 중독으로 비명횡사했다. 시동생이란 사람이 와서 대충 장례 치르고, 남아 있던 모든 것 챙겨가는 것을 보고, 서울에서의 삶이 만만치 않음을 다시 맘에 새겨 넣는다. 아니 자연스레 받아들여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떡집 아줌마가 생전에 살 길을 챙겨 주겠노라 이것저것 도와 주지만, 밑천 없이 하는 일에도 자기 구역이 있다고 텃세 부리는 사람들로 인해 맘고생 많이 하면서 서울의 모습을 점차 알아가게 된다.
서울의 역한 냄새라고 표현하기 까지 한다. 하긴, 지금도 어찌 보면 서울이란 곳은 한없이 자기 생활만을 주장하며 바쁘게 살아가면서 허울좋은 관계맺기만 남아 있을 지도 모르는 모습들이 많이 보이는데.. 그 시대에는 살기 힘들었으니 더 했겠지?
날강도 같은 사람에게 가지고 있는 재산이라 할 수 있는 리어커까지 다 빼앗기고 무엇이 겁이 났을까?
예전에 농사지을 때 낫 갈던 솜씨로 칼 갈이를 하게 되면서 서울의 다른 면을 보게 된다. 남의집 살던 사람들이 많던 그 시절에 그 상항에 놓인 아가씨도 우연히 만나 동향임을 알게되어 맘을 조금 여는데... 어느 순간 사라지고 만다.
결국 이 주인공은 세월의 흐름앞에 건강함도 맡기며, 녹녹치 않은 서울 에서의 삶 앞에서 하나 둘 어쩔 수 없이 빼앗기다 시피 하는데... 복권에 희망을 걸고, 구입하며 알게된 여인의 안타까운 현실앞에 의를 드러내며 해결하려다 자신의 다리 한쪽을 절단하게 된다.
이렇게 서울의 음지 그것도 넉넉하지 않은 산동네 비탈진 음지를 살아가는 소시민, 가장의 모습을 담아내는 이 책의
한줄 한줄을 읽으면서 황토 읽었을 때처럼 가슴이 시리고 먹먹함으로 채워짐이 느껴졌다.
이분들의 노력이 없었더라면 현재도 없겠지? 또한 우리의 지금 이 순간 현재가 없다면 다음 세대도 없겠지?
역사속에 흐르는 연장선 상의 연속성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소설이었다.
소설이지만, 현실인 듯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몰입해 읽어 내려 갔다.
상황은 다르지만, 분명 현실에도 알지 못하는 곳에서 이러한 가장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부지기수리라.
이즈음 복지 문제로 시끄럽다. 정치는 잘 모르곘으나, 분명 복지정책은 확립되어져야 하고, 앞으로 시행되어야 함에 분명하다. 여러가지 예산들이 다른 곳으로 얼토당토하지 않게 새어 나가지 않고, 사용되어져야 할 곳에 올바로 투자되어서 언쟁이 아닌 이런 음지에 사는 이들이 최소한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혜택을 받는 시간이 앞당겨 졌음 하는 바램을 담아 보게 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벼랑으로 내모는
시대의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피할 수 없는 변화 속에서 삶의 벼랑으로 내몰린 채
'무작정 상경'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던 세대의 비극과 시대의 아픔
- 책 뒷표지 내용 중에서 -
그들은 바로 40여 년 전의 '무작정 상경 1세대'입니다.
국민소득 150불 시대의 도시 빈민들이 국민소득 2만불 시대에도
그대로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심각한 사실이 우리의 현실이며, 중편 「비탈진 음지」를
장편 『비탈진 음지 』로 개작해야 하는 이유였습니다.
'굶주리는 사람이 단 하나만 있어도 그건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시인 릴케의 고통스러운 읇조림입니다.
하물며 소설가로서 오늘의 우리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겠습니까.
독자들 또한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일원입니다.
『비탈진 음지』를 읽을 필요가 없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고대합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