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춘기 맞짱 뜨기 - 노경실의 청소년 에세이
노경실 지음, 조성흠 그림 / 바다출판사 / 2011년 7월
평점 :
개인적으로는 목차도 보지 않은 채 작가님에 대한 신뢰와 전작 <열 네살이 어때서>에 대한 믿음으로 주저없이 선택한 책이었다. 기대가 너무 커서일까? 이 책을 꼼꼼하게 살펴보지 않아서 였을까?
전작과 다른 전개 속에 마치 자기계발서를 연상케 하는 글 구성에 대해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 개인적인 견해이고, 이 책 내용에 사춘기 아이들 특성과 사회모습들 아이들의 가치관과 부모들의 어긋난 가치관으로 일어날 수 있는 갈들 묘사들에 대해 내용 전반적인 것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분명 아님을 강조해 둔다.
사실 개인적으로 자랑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 예민함을 치자면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이고, 오래전부터 청소년에 대한 사회 문제랄까 가치관 변화에 대해서는 깊이는 없어도 관심을 가졌었고, 현재도 그러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의 내용들은 익히 알고 있거나 경험했던 예시들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없었음이 주된 이유이지, 책내용을 평가할 입장도 아니고, 평가할 엄두조차 낼 수 없음은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에 서두에 지나칠 만큼 강조하고 시작하는 것이다. 오해가 없었음 하는 바램 또한 담아 둔다.
사춘기
개인적으로도 성장 과정중에 거쳐온 시기임에도 이즈음 자라나는 청소년을 바라보면 새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얼까?
우리네 부모님들도 마찬가지 셨겠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네들은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대였기에 그닥 감정의 변화를 드러낼 수 없었고, 순종이 미덕임이 팽배했달까? 그냥 그것이 전부겠거니 하며 그 시절을 그러려니 보내셨기에 우리네와 다른 청소년기를 겪으며 성장하셨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즈음 사춘기가 유독 문제시 될 수 있음은 IT 발달과 쏟아지는 정보 홍수속에 굳이 부모들에게 얻어지는 정보 보다 더 자연스레 접할 수 있고, 굳이 바쁘게 경제활동을 하며 아이들 뒷바라지를 제대로 할 수 없을지 모르는 틈을 타서 스스로 얻고 습득하는 정보들이 많은 이유도 부모와 점점 더 거리를 좁힐 수 없는 성장기를 접하는 청소년들이기에 부모들이 같은 사춘기를 겪었음에도 새삼스레 느끼고, 자녀 교육 하기 힘들다는 이유가 드러나고 곳곳에서 사회 문제시 되어 표출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소소할 정도로 아이들의 묘사를 역시 어렵지 않은 필체로 묘사를 하고 있다. 문제제기는 상자 안에 뉴스와 이슈화 되었던 자료를 적어서 제기하고, 그 후에 저자의 생각과 사례를 적절하게 포함시켜 무리없이 적고 있는 듯 보였다.
개인적으로 심하게 부정적일지 모르겠지만, 이 책이 청소년 소설임에도 아이들보다 부모들에게 더 많은 공감을 받을 수 있을 듯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 나면 예~ 뭐~ 다 아는데~ 시시한뎨~ 어쩌라고~ 어차피 다 일고 있고, 우리 부모와는 이야기도 안통하는데~ 하고 넘길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면서 떨쳐버릴 수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손 놓고 뒷짐지고 있을 수 만은 없을 듯 싶다. 선진국으로부터 문화적 영향을 받고 흡수를 하며 발달을 해가는 우리의 현실을 볼때 이 또한 그런 과정을 겪어 가는 과도기적인 흐름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렇기에 개인 혼자의 문제는 아니지만, 작은 물방울들이 모여 큰 강물, 바다를 이룬다는 구태의연한 이야기를 끄집어 내면서까지 이 책의 내용에 대한 심각성을 강조하고 싶다.
한사람 한사람 느끼고 있는 문제의식을 내가 아니어도? 굳이 내가 할 필요가 있을까? 내문제도 아닌데~ 하며 소홀히 하고 치부해 버리고 등한히 할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우리집 아이들에게 잘 안되더라도 인내하며 적용해 간다면 조금은 변화가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지금 당장~ 음식점에 들어가서 주문과 동시에 음식이 내 앞에 놓여져야 편함을 느낄 정도로 빨리 빨리가 익숙해진 우리네 정서에 인내하며 언제까지 기다려 라고 말할 수 있을것이다. 누군가 해주겠지...라고 조금은 묻어가려는 심정으로 안일한 입장에 서서 말이다.
하지만, 내가 아니면 누가 해주지 않을 것 같다. 교욱정책적으로 해주겠지? ㅠㅠ
정책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언급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면 이런 현실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모두 함께 느끼고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앞장서기 힘들면
작은 부분에서 나와 연관 있는 지인들부터 각성하는 소소한 몸에 밴 실천들...이 급선무가 되어야 할 듯 싶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소소한 움직임이 일어날 때 적어도 정책적으로 눈안보이는 귀가 안들리는 그런 실무 담당자들이 어서 눈이 띄어지고, 귀가 열려지는 기적같은 현실이 일어날 수 있게 되길 바랄 뿐이다.
이런 바램이 기적이 아닌 현실이 되어지고, 앞당겨 지리라 믿는 믿음이 헛되질 않기 바랄 뿐이라고 추측형 동사에 담아보려니 씁쓸하고 아쉽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