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코리안 델리 - 백인 사위와 한국인 장모의 좌충우돌 편의점 운영기
벤 라이더 하우 지음, 이수영 옮김 / 정은문고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실제로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인들은 주로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미국 문단에서도 인정을 받은 한국인 2세의 작품들~에서도

한국인 부모들은 모두 식료품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겁고 비극적인 이들 소설의 색채와는 정반대로,

이 책은 뉴욕의 한국인 가게의 모습을 코믹하고 밝은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물론 진한 페이소스를 바탕에 깔고 있는, 건강한 깨달음의 웃음이다.

이 책을 읽으며, 한국인들의 세련되지 못한 모습을 비하했다고

분노할 독자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미국 중산층의 위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포복절도할 입당을 과시하고 있으며~

- pp. 427~428(옮긴이의 말 중에서) -

 

 

이즈음 우리 한국도 이젠 단일민족 국가라 하긴 쉽지 않을 정도로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그네들의 상황이 부유하든 그렇지 않든 말이다. 때로는 외국인 남·녀들이 한국으로 와서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고 있는 여유로와 보이는 모습들이 TV 를 통해 보여지는 경우도 많이 늘어나고 있는 거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솔직히 한국인 장모와 외국인 사위가 주인공이 되어 식료품점을 열어 운영하는 내용이 주가 되어 풀어지는 이 책에 관심이 생겼다.  왜냐면 솔직히 자녀를 키우면 이런 상황들이 비단 책속의 이야기로 그치지 않을 확률이 점점 높아지는 것을 쉽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기대가 많아서 였을까?  어떤 울림이나 내용을 원하고 이 책을 펼쳐 들었는지 조차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책 읽기는 쉽지 않았다.

 

위에 인용해서 표현한 말에 많은 공감을 하게 되었던 부분들도 눈에 솔솔찮게 들어옴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얼마 시간이 소요되지 않을 정도로 생각보다 많은 부분에서 한국인들의 성격이나 문화를 묘사하며 비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결국 내가 되살려내고자 했던 것은 그 경험과 느낌이었으며,

 무엇보다도 내 안에서 일어났던 변화에 대해,

그리고 변화의 원인에 대해 정직하게 쓰고자 했다.

그러다보니 정확한 사실 관계에서는 살짝(아주 조금이라고 믿고 있긴 하지만)

벗어날 떄도 있을 수밖에 없었다.

 

- p. 422(지은이의 말 중에서)-

 

 

나란 독자가 야박해서일까? 지은이의 말 부분을 아무리 읽어도 그다지 강한 공감도, 긴박한 내용전개도 얻을 수 없었다.  그냥 일상에서 일어난 소소한 신변잡기랄까? 그런 평범함을 벗어나지 못한 울림 밖에는 얻을 수 없었고, 나란 독자에게 그 이상도 이하도 허락하지 않았다 해야 할까?

아무튼 그랬다.

 

물론, 처음엔 고상했던 문학가 사위(청교도 집안 출생)가 한국 장모와 함께 지내는 삶이 녹녹하진 않았을 것이다.  내용 곳곳엔 브루클린이라는 델리가 위치한 지역 특성상 다인종 단골과 점원들과 어울려 지낼 수 밖에 없었던 가게 분위기가 묘사된다.  이런 곳에서 함께 적응하며 지냈을 사위의 심정도 조금은 이해되는 듯 했다.  이런 분위기는 작가에게 새로운 활력과 전망을 불어넣어준다(옮긴이의 말 중에서)라고 옮긴이가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을 봐도 말이다.

 

여러가지 천신만고 끝에 사위는 좌충우돌 삐걱거리면서도 가게 경영에 생각보다 푹 빠져 버렸다.  이 점에선 어찌 되었던 사위의 노력을 높게 사고 싶기도 했다.

 

그래도 이 책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작가의 가족 혹은 스승이며 친구인 세 사람에 대한 애정이 드러날 때다.

이 세명은 한국인, 백인, 흑인으로 인종이 모두 다르며,

결국  두 사람은 세상을 떠났고 한 사람은 심각한 생명의 위기를 겪는다.

뉴욕 문학계의 명사인 조지 플림튼, 한국계 이민자인 장모 케이, 가게의 흑인 점원 드웨인,

이 세사람의 공통적으로 위대한 점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들은 작가를 어떻게 바꿔놓았을까?

이 책은 그 놀라운 2년여의 기록이다.

- p.430(옮긴이의 말 중에서)-

 

 

이 세명이 일부러 사위를 바꾸려 하지 않았지만, 여러 면에서 사위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음은 공감을 한다.  삐걱거리면서도 그네들 중 두명의 죽음의 소식과 마주했을 때 심경 변화랄까?  또한 장모마저 아프게 되고 나서 변화를 묘사하는 부분 또한 이들과의 관계에서 느끼고 생각했던 사위의 감정 속에서 애정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 내용을 공감할 수 없음은 타지 생활을 일정기간동안 하지 않아서 일 수도 있다.  또한 이 내용을 단지 신변잡기라 치부해 버릴 수 없음도, 서두에 언급했듯이 요즘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면서 대두되는 사회 문제들을 소홀히 대할 수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비록 신변잡기성 이야기를 늘어놓은 느낌을 지울 수 없으나 이 책의 출간에 대한 의미를 부여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온고한 백인이었던 사람이 삐걱거리면서 알게 모르게 한국 문화에 젖어 들고, 유쾌하게 풀어내고, 한국인들과 융화되는 과정 속에서 많은 의미도 있겠고, 또한 생각해 볼 거리가 많음은 백배 인정한다.  하지만, 지나치리 만큼 소소한 일상의 나열과 뭐랄까? 사건 전개의 정점이 구분되지 않음이 아쉬웠음은 지울 수 없을 듯 했다.    나란 독자에게 전해진 울림임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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