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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만큼 성공한다 - 김정운교수가 제안하는 주5일시대 일과 놀이의 심리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김정운 교수님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던지라 주저없이 선택했던 책이었다. 하지만, 책이 포함되어 있는 코너는 인문 분야였던 듯 싶다.
일반 심리학이 아닌가 보다.
책을 읽기 시작했다.
여가의 필요성을 학문적인 근거로 저자의 경험을 섞어 이야기를 풀어낸 책인 거 같다.
요즘엔 개미와 배짱이 이야기도 바뀌었다 한다. 배짱이는 여름내 일해서 겨울에 디스크며 허리 아파서 병원 다니고, 여름에 노래 연습했던 개미는 아이돌 스타가 되었다고~
헉하고 웃을일 만은 아닌 듯 싶다. 최근 주5일 수업이 확대되면서 주말에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다. 이 말은 결국 주말에 일하는 부모들에겐 부담으로 작용해서 아이를 맡길 곳을 찾게 될 것이고, 함께 휴식을 취하는 가정에선 여행이며 그 시간을 어찌 보낼까를 고민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주말에 부부가 부재일 경우는 분명 사교육 시장으로 아이들을 먙기며 그 시간에 보호의 의미를 포함해서 부탁할 것이고, 휴식을 취하는 집들도 그다지 우리 문화에선 놀이에 익숙하지 않은지라 획기적인 후식을 취하지 못하는 것도 비일비재 할 수 있을 듯 싶다.
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비판할 수 있는 능력도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몰라도 눈에 보이는 경우가 있기도 한다.
그냥 봐도 여러가지 주 40시간 근무제도 대두되는 이즈음 놀이에 대한 관심은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정말 어찌 놀아야 할까?
어찌 휴일을 보내야 잘 보낼 수 있을까? 에 대한 답을 분명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조금 하긴 했었다.
이런 부분들에 대해 저자는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놀이도 무조건 노는 것이 아니고, 방법을 알아서 효율적으로 놀아야 한다고 말이다.
어찌 보면 일반 심라학이 아니라 딱딱한 이론으로 치부되어 버릴 수 있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또한 만약 저자의 신변잡기만 늘어놓으면 책이 가볍다 할 수 있을지 모르곘다. 어떤 책이든 독자에 따라 전해지는 공감과 울림이 다르니까 읽는 이들의 몫일 수 있겠다 싶었다.
이 책은 크게 두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처음에 1부 나는 놈 위에 노는 놈 있다(chapter 1~3) 2부 삶을 축제로 만들자 (chapter 4~6) 이렇게 나눠 놓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1부에선 노는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말고, 효율적으로 놀아야 하는 이유랄까? 필요성, 당위성들을 저자의 시각대로 풀어내고 있는 듯 했다. 2부에선 성공을 하기 위해서 놀지 않는 것이 아니고, 삶과 여가의 조화속에 성공을 하며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 하는 듯 했다.
평소에 TV나 여러가지 매체들을 통해서 저자의 강의나 패널로 나와 이야기 하는 프로그램에서 보고 느꼈던, 그리고, 저자의 다른 책에서 느꼈던 느낌 그대로 책에서 역시 묻어 난다. 저자도 이야기 하지만, 여가, 놀이에 대해 연구하고 강의한다고 하면 기업체나 여타 강의 의뢰를 할때도 기분전환 용으로 가벼운 강의를 요구한다 한다. 개인적으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일반 사람들처럼 노는데도 방법이 필요할까? 그냥 놀면 되는 거 아닐까? 등등의 생각을 머리에서 지우지 못한 채로 말이다. 어찌보면 매체를 통해 저자에 대한 인상을 담았긴 했지만, 무겁지 않은 느낌으로 담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여가에 대해 이야기 한다니까~ 강의하는 저자의 외모 또한 무겁고 진지하지 않아 보이니까~ 말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선 자연스레 그런 느낌을 떨쳐 버려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할까?
저자가 스스로 『이 책은 재미와 휴식에 대한 심리학적 설명이다. ~(중략)~ 어찌 보면 이 책의 내용은 내가 현실 속에서 느끼는 나 자신의 문제접들을 심리학 이론과 연관시켜 솔직하게 풀ㅇ어낸 것들이라 할 수 있다. - pp.16~17-』 라고 책 소개를 하고 있듯이
여가라는 자체가 그냥 단순한 느낌으로 풀어내며 노래방 가고 폭탄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 아니라고 강조하며 방법을 제시하는 저자의 글을 보고 나니 절대 가벼이 느끼면 안될 거 같았기 때문이다.
공감을 하게 되는 부분 또한 셀수 없이 많았음을 이야기 하고 싶다. 다 옮겨 적을 수 없을 만큼 말이다.
생뚱맞은 내용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1부의 Chapter 2(놀이는 창의성과 동의어) 라고 시작되는 단락을 읽을 때였다.
한번 물어보자.
'도끼', '망치', '나무', '톱'.
이 네가지 중에서 불필요한 한 가지를 빼내라고 한다면 당신은 어떤 것을 선택하겠는가?
(이 글을 읽자 마자 개인적으론 망치를 꼽았다. 하지만, 그 뒤에 따라오는 저자의 글을 읽고 어? 하는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다.)
아마도 우리들 중 대부분은 '나무'를 뺴낼 것이다.
...(중략)...
로시아의 벌목공들에게 똑 같은 질문을 던졌더니 전혀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이들 네 가지 중에서 불필요한 것은 '망치'라는 것이다.
이들에게 '나무'를 뺀 연장들은 아무 소용이 없다.
- p. 82 -
저자의 독특함이 풍겨 나온달까? 왜 여가를 이야기 하면서 창의성을 운운하는 걸까? 하며 읽어내려 갈 법한 글귀들이 많았던 것이다.
물론 책을 다 읽으면 저자의 의도를 알 수 있으리라..
저자는 우리가 늘 얽매이고 빠져들 수 있는 오류 몇가지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바로 첫번 쨰는 이부분이다. 『 이쯤에서 우리의 ' 놀면 불안해지는 병;'의 원인이 되는 IMF 위기 당시의 문제를 좀더 냉철하게 들여다봐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샴페인 뚜껑을 일찍 열었기 때문에 IMF 위기가 닥친 것이 절대 아니다. 그러나 정말 착하디착한 우리 국민들은 모두 자신들의 사치와 게으름으로 인해 경제 위기가 닥친 것으로 생각하고 온갖 급붙이를 다 내다펼며 반성했다. 그리고는 덜컥 '놀면 불안해지는 만성적인 부적응적 불안'에 걸려 버린 것이다. - pp. 24~25 - 』
그리고는 곧바로 덧붙인다. 『 '놀면 불안해지는 병'으로는 우리 여가 문화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없다. 오히려 보다 적극적으로 놀지 못하면 제2의 IMF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 - p. 25 - 』
두번째는 이부분이다. 『20세기의 산업 사회에서는 노동소외 현상이 문제였다면 앞으로는 여가소외 현상이 문제가 된다. 주말은 물론 야간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저소득층의 박탈감은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된다. 계층 간의 살등이 더욱 심각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중략) 앞으로 일부 계층을 중심으로 해외여행 등의 과소비가 늘어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주말, 야간 가릴 것 없이 일하는 투잡스, 쓰리잡스 족들이 늘어나는 사회양극화 현상과 이로 인한 사회문화적 갈등은 치유할 수 없는 수준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 p. 38 - 』
저자가 책에 풀어낸 이야기들은 당위성이 있고, 그러하면 좋을 거 같다는 공감은 된다. 책 내용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개인적으로 그러한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다 하기엔 능력 부족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여가 문화를 정착 시키고, 확대해서 모두 다 함께 여가를 즐기며 효율적인 사회 모습을 만들어 내기에는 개인이 감당할 부분들이 많을 뿐더러 개인들만의 몫이 아니리라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가 획일화 되서 모두 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어느 곳이나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혼자 독불장군이 되어 살 수 없고, 이렇게 문화 소외현상이 확대 되서 급속도로 퍼지게 되면 사회적 문제들이 야기 되어서 음성적 결과들로 만들어져서 소외그룹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그 영향이 미치게 되고, 악순환적 고리를 끊을 수 없을 듯 싶었기 때문이다. - 이런 모습들은 저자가 책 내용중에도 많이 언급을 하고 있다. )
이 책을 시작으로 발전되고 나아질 거라는 기대는 한다. 그러하려면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것이다.
이런 것들을 고려해 본다면 당장은 이 책의 내용들이 뭐랄까? 듣기 좋은 허울 좋은 이론이라고 치부되는 딜레마에 빠져버릴 수 있을 듯 싶어 보였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이 책에서 느낄 수 있는 2% 부족한 부분이라고 생각을 해봤다.
그럼에도 어쩌겠는가? 희망이라는 단어에 말 그대로 꿈과 희망을 실어 보는 수 밖에~~~없을 듯 하다.
노동 소외 없이 국가 경쟁력 강회되어 발달되어 소득 수준 1만 달러를 이뤘듯이 문화 소외 현상도 최소화 시켜서 발목 잡고 있는 2만 달러 소득수준을 이룰 수 있는 사회가 빨리 이루어지길 바라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