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워하다 죽으리
이수광 지음 / 창해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역사 팩션소설을 주제로 글을 풀어나가는 작가 이수광님의 출간 책이라 해서 주저없이 펼쳐 들었다.

 

어쩌면 역사속으로 묻혀버릴 이야기를 통해 역사적 배경과 사실도 곁들이며, 또한 역사 이야기라고 하면 딱딱하고 어려울 거 같다는 무조건적 선입견을 덜어내기 충분할 만 한

이야기였기에 개인적으로 높이 평가하고 싶었다.

 

감려는 부령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 연화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여 『연희언행록』을 지었다. 

선비가 기생의 언행록을 지었다는 사실도 놀랍거니와 그녀를 회상하면서 그리워 몸부림치는

『사유약부』와 같은 시집은 조선시대 5백년 역사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김려는 무엇 때문에 한낱 기생인 연화에게 이토록 지고 지순한 순애보를 바쳤을까.

- 머리말 중에서 p. 7 -

 

 

18세기 조선의 시인이자 유배객인 김려와 부령도호부 부기 연화의 사랑이야기이다.

 

김려가 유배에서 풀려나 집으로 돌아와서 숨고르기도 하지 못한 채 연화의 모습을 꿈에 보고 홀린 듯 집을 나선다.

13개의 소제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나는 김려의 관점으로 그 다음엔 연화의 관점으로 일어난 일을 묘사하며 전개되어 진다.

 

물론 현재 김려가 연화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 속에 만나게 된 사연들... 각자 몫으로 남겨진 유배와 고초라는 시련을 겪는 이야기...

딱딱할 거 같고 쉽게 접근할 수 없을 듯 해 보이지만, 이들의 사랑이야기는 그런 모든 것들에서 단연 드러나고 돋보여지며 이야기는 전개된다.

저자의 무겁지 않은 필체로 섬세함과 서정성을 듬뿍 담아 절절한 사랑을 그려내기에 말이다.

 

연인들은 실낱같은 목숨을 부지하면서 3천리 밖에서 서로를 그리워하며 연화는 편지를 보낸다.  3백일에 걸쳐 3천리를 걸어서 김려에게 전해진다.

정말 애닯은 사랑이 아닐 수 없었을 듯 싶었다. 김려는 남쪽으로 유배지가 정해졌고, 연화는 고향이 북쪽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둘은 맘의 애틋함을 가득 담은 채 떨어져 지내게 되었던

것이다.

 

연화는 관기였기에 참판의 소실이 되려 했지만, 채 과정을 거치기도 전에 탄핵받은 양반이 되어 정실 부인으로부터 할급휴서를 받게 된다. (할급휴서 - 남녀가 헤어질 때 이혼 증서로 남자가 깃 저고리를 잘라서 주는 것이다.) 소실로 정해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 집에도 머물 수 없게 되었던 것이었다.

 

김려의 편지는 3천리를 날아서 왔다.

나는 김려의 편지를 받고 울었다.

그리고 몇 번이나 편지를 썼다가 찢으면서 다시 썼다.

 

서방님의 편지를 받고 보니 첩의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는 그와 같이 어리석은 생각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리워하다가 죽는 한이 있어도 서방님을 기다릴 것입니다.

아니, 서방님을 다시 만나기 전에는 결코 죽지 ㅇ낳을 것입니다.

긴긴 가을밤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거나.

깊은 겨울밤 눈이 사락사락 내리는 소리를 듣게 되면 보고 싶기야 할 테지요.

보고 싶어 하고 그리워하면서 기다릴 것입니다.

해마다 꽃은 피고 지고, 내 그리움이 켜켜로 쌓여 산보다 높아지겠지요.

서방님이 오시지 않는다고 해도 기다릴 테야요.

정녕 오시지 않으면 그리워하다가 죽을 것입니다.

- pp. 51~ 52 -

 

김려가 시인이었기에 책속에서 표현되어지는 그의 마음이 모두 시로 묘사되는 것은 알겠다.  연화 또한 놀랄만큼 시로 마음을 표현하며 응대하는 묘사가 많이 보인다.

연화는 금기서화에 능하고 문장이 뛰어날 뿐 아니라 절세미인이었다고 지은이는 머리말에서 쓰고 있다.  아름답고 비록 관기지만, 책을 가까이 했었나 보다.  예전 조선시대는 시가 한자로 이루어 있었으니 말이다.  상대가 시로 표현하는 의미를 알아 듣고 본인의 마음을 시에 담으려면 평범하지 않았음이 분명해 보였다.

후반부에 보니 무예도 뛰어났었나 보다.  예전엔 지려적 위치 상 북쪽의 기녀들도 무술을 포함한 기술 연마에 힘을 쓰며 익혔다 한다.

 

구절 구절 읽어내려가면서 가슴이 먹먹해져 옴이 느껴졌다.  책 속 이야기긴 하지만 애절하다 못해 절절해서 가슴시려오는 전율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이들의 사랑을 가로 막을 수 있을까?

 

유배에서 풀려나 부령으로 찾아나서는 김려의 건강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유배지에서 온갖 시련을 당했기에 그러했으리라.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 품에서 죽겠다는 연화만을 생각하며 찾아 나선 것이기도 하다.

찾아 가는 도중에 과거도 회상하고, 함께 보낸 기억들을 꺼내며 추억해 보기도 하고....

연화는 고문을 당해서 몸이 심하게 망가져 있었다.  의원들도 희망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김려에 대한 그리움, 원망, 애절함이 담겨져서 쉽게 저승길로 들어서지 못하며

무작정 기다리겠노라 목숨을 부여잡고 생을 근근히 이어가는데...

 

어찌보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일지도 모르지만, 상대에 대한 끈을 놓지 않고, 이어가는  상대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

무슨 말로 그 느낌을 형용할 수 있을까?

또한 온갖 고초와 시련 속에서도 각자 생활에서  김려는 <연희 언행록>을 쓰고, 연화 또한 허난설헌과 위강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로 작품까지 썼다는 것을 읽고 대단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글과 시로 그들의 마음을 온전히 다 공감하고 느끼고 이해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비록 연화의 작품이 유실되었다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이처럼 다시 글로 씌어져 독자의 사랑을 기다리게 되었던 것으로도 다행이지 싶었다.

그들의 사랑을 보는 시각이 어떨까?  어쩜 유치해 보이는 모습이어서 소홀히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사랑을 나타내는 감정은 변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삶의 모습이 변화되면서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이 변했을 뿐이 아닐까? 싶다.

 

따뜻한 봄내음 풍기는 솜처럼 부드럽고 보송보송함이 좋아 보이는 계절에 이처럼 사랑할 수 있는 나이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가

봄햇살 속의 아지랑이처럼 살포시 솟아 오르고 있다.

 

그들의 사랑에 존경을 담아 보내고 싶은 마음도 함께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