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가난한 농부로 살 줄 알았던 윌리엄 스토너는 열아홉살에 더 나은 농업 기술을 배우기 위해 농과대학에 입학한다. 2학년 때 영문학 개론을 듣던 스토너는 문학의 아름다움에 빠져들고 이제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음을 알게 된다. 그 후로 평생을 윌리엄 스토너는 영문학자이자 교육자로 살아간다. 파티에서 처음 본 여인에게 반해 결혼도 하고 아버지도 되고. 그러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고 가르치는 일은 행복한 일이지만 깐깐하고 융통성이 적은 스토너는 점점 외롭고 고독한 삶을 살게 된다. 큰 야망이 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매진하며 조용하고 소박한 행복을 원했던 한 사람의 삶을 다큐멘터리를 보는 기분으로 읽었다. 그게 삶이 아닌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이야기를 통한 감동이지만 어떤 정보를 얻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은 좋은 소설을 읽으면서 얻게 되는 우수리 같은 것이다.이 소설에서 얻게 된 우수리. 전 세계에 특히, 대한 민국에 ‘미국식 민주주의‘를 이식한 미국은 그 시절에 이미 ‘장례 보험이 있었고(151쪽)‘ 정년 개념이 있었을 뿐더러 지금 우리의 임금 피크제와는 다르지만 정년 이후 2년을 더 일 할 수 있는 제도도 있었다. 지구가 둥그니까 세상은 똑같이 발전하는 거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물만 잘 못 먹어도 죽는 아프리카 오지에 사는 사람들은 코시국을 알까?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