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동이라는 동네를 배경으로 아파트 살이의 다양한 풍경을 담은 연작 소설. 층간 소음, 엄마 모임, 아파트 경비, 님비. 누구나 한번쯤 겪어봤거나 들어는 봤을 얘기들이다. 우리 가족이 사는 집은 도시 변두리의 낡은 다세대 주택이다. 다 해야 마흔 가구가 안 되지만, 소소한 문제들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문 닫으면 세상과 차단된 내 집이지만 내 발 아래로, 머리 위로 사람이 살고 있으니 문제가 없을 수가 없다. 정을 나누는 이웃의 개념도 없어졌고 개인의 권리가 가장 중요한 세상이다. 그러한 개인들이 의도치 않게 층층이 모여 살고 있으니 얼굴 붉힐 일 만들지 않으려면 최소한의 규칙은 지키고 서로 조심하는 수 밖에 없다. 잔잔하게 읽어가다가 가슴이 저릿해진 건 ‘난이 언니‘이야기였다. 마지막 얘기는 서영동에 살긴 하지만 아파트 주민도 아니고 그 언저리에 사는 아영의 얘기다. 아영은 전문대 영어과를 나와서 여러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간다. 일주일에 하루는 고양이 호텔에서 고양이들을 돌보는데 주인이 죽은 원룸에서 구조된 고양이가 난이다. 궁지에 몰려 삶을 접어버렸다는 고양이 난이의 언니. 아영도 난이의 언니와 비슷한 처지에 몰린다. 경화의 학원에서 시험지 채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영. 금방 뜯길 재개발 예정 건물에 살면서도 학원 전임 강사 자리를 꿈꾸면서 영어 공부를 계속하는 아영. 정말로 건물에서 나와야 해서 학원에서 며칠을 먹고 자게 된 아영에게 실력을 증명할 기회가 주어졌다. 잘 되면 좋겠다. 경화가 아영에게 기회를 주면 좋겠다. 그리고, 혹시 기회를 얻지 못 한다 해도 아영이 난이 언니처럼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 살아있는 사람만이 삶을 말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