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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라미 세상이야 ㅣ 스콜라 창작 그림책 57
하야시 기린 지음, 쇼노 나오코 그림, 황진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3월
평점 :
동그란 액자 안에 엄마 곰과 아기 곰이 있다. 목과 발목에 동그란 장식을 달고 동그란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액자 주변에는 동그란 무늬가 있고, 제목들도 동글동글한 모양이다. 동그란 모양의 책이 아닌 게 아쉬울 정도.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모두가 동그라미를 좋아하게 된다. 패션 아이템도, 헤어스타일도, 심지어는 집 모양까지 동그라미 모양이다. 그러다가 더 욕심이 생겨 먹을 것도 동그랗게 만들고, 포장도 동그랗다. 동그란 선물을 받으면 마음도 동글동글해진다며, 마음까지 지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랬던 동그라미의 인기가 바닥에 떨어지는 것은 순식간, 그 모양이 가진 특징대로 데굴데굴 굴러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너무 순식간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뒤 따라 유행한 세모, 세모가 유행한 속도보다 더 빨리 뒤 따라오고 있는 네모. 그 다음은 뭘까?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산다. 남들에게 뒤처지는 것이 싫어서 나의 기호나 취향과 상관없이 모두가 올라탄 무빙워크에 발을 얹는다.
글을 쓴 하야시 기린은 시인이자 작사가, 번역가로서 활동하며 말놀이의 재미를 즐기는 창작자이다. <양지>로 산케이아동출판문화상 산케이신문사상을 받았고, <별 별 초록별>로 일본아동펜상 그림책상을 받았다. 그림을 그린 쇼노 나오코 작가와 <그 소문 들었어?>, <이 세상 최고의 딸기>를 함께 작업하였다.
<그 소문 들었어?>에서도 가짜뉴스를 주제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는데, 이번 책 또한 무작정 유행을 따라가는 사람들의 심리를 우화처럼 풀어내었다. 유행을 따르는 것이 무조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것으로 인해 파괴되어가는 환경과, 피어나지 못하는 창의력에 대해서 고민해보아야 한다.
쇼노 나오코가 표현한 동물들의 표정이나 행동들은 SNS 세상 속의 인간들을 묘사한 것 같아서 멋쩍기까지 하다. 택배트럭에 가득 찬 동그라미들, 그러나 쏟아지면 데굴데굴 굴러 손상되고 마는 동그라미. 과연 나는 파손된 동그라미도 좋아했던 게 맞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이 책을 통해 나만의 모양을 찾아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