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급해졌어, 아름다운 것을 모두 보고 싶어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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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소한 일상을 위트있게 그려내는 작가 '마스다미리'
그녀의 책은 언제나 일상을 담백하고도 진솔하게 그려내어 다양한 연령대의 독자들에게 많은사랑을 받고 있다.

그녀가 이번엔 여행에세이를 냈다.
「마음이 급해졌어, 아름다운 것를 모두 보고 싶어.」 '아름다운 것을 많이 봐두고 싶다.' 마흔 살이 됐을 때, 왠지 그런 다급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이를 한 살씩 먹어 갈 수록 하지 못한 일에 대한 후회가 커지고 이루고 싶은 일에 대한 조급함이 든다.
그 중 여행도 큰 부분을 차지 하는데
마흔 살이 됐을 때 아름다운 것을 많이 봐둬야 겠다는 조급함으로 여행을 시작한 그녀의 이야기는 내게도 여행에 대한 갈증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이 책은 총 다섯 곳의 여행이야기를 담고 있다.
북유럽 오로라여행
독일의 크리스마스마켓 여행
프랑스 몽생미셸 여행
브라질 리우카니발 여행
타이완 핑시퐁등제

누구나 가보고 싶은 장소를 소개하는 것도 이 책의 강점이지만 패키지투어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도 이 책만의 독특한 매력.
보통의 여행에세이는 자유여행으로 스스로 여행 계획을 세우고 목적지를 찾아내어 그 과정에서의 에피소드를 다루는 데 주력하지만 이 책은 패키지투어답게 고단한 과정을 보이지 않아 보는 독자들마저도 편안한 시선으로 여행을 감상하게 한다.

낯가림이 심한 편이라 모르는 사람과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부담에 패키지 여행은 늘 투어에서 제하였는데 그녀의 패키지여행을 보고 선입관이 좀 깨졌다.
전문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편안하면서도 알찬 여행을 할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길동무가 되어 주는 제법 괜찮은 시간.

몇 년 이내로 유럽의 크리스마켓은 꼭 한 번 다녀오고 싶다 생각했는데 독일의 크리스마켓 여행 이야기는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조만간 사랑하는 이와 밤의 크리스마켓을 걸으며 글루바인을 마시기로.

여행수기 뿐 아니라 마스다 미리만의 여행팁이 들어 있어 여행을 앞 둔 이들이 읽어봐도 도움이 될 듯 하다.
함께 여행을 하고 있는 듯한 서사와 거창하진 않지만 친구의 여행기를 보는 듯한 친숙함이 묻어나는 에세이.
책을 덮고 나니 미리 여름 휴가를 다녀온 듯한 기분이다.

113p
약간 불편한 인간관계는 있지만, 투어가 있는 한, 여자 혼자 세계 어디든 갈 수 있구다 하고 이 브라질에서 자신감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나리타에 도착할 무렵에는 거짓말같이 감기도 다 나아 있었다.

137p
한 번으로 좋더. 한번 더 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도, 이 한 번은 귀한 것이었다. 아름다운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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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린다 작가정신 시그림책
함민복 지음, 한성옥 그림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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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지 않은 일상적인 언어와 소재를 통해 인간적인 미를 드러내는 서정시인 

함민복님의 시 <흔들린다>

얇은 두께의 양장본으로 표지엔 거칠지만 새심하게 그린 그림이 자리잡고 있어 동화책으로 착각할 뻔 했다. 시동화책이라는 새롭고 참신한 장르의 책.


매력적이고 위태로운 제목의 시를 그에 걸맞는 그림과 함께 담아 냈는데

실력은 물론 그림에 대한 열정까지 겸비한 그림책 작가 한성옥님의 일러스트가 더해져 

풍성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최근들어 시집이 베스트셀러에 랭크 될 만큼 인기를 끄는 대중적인 시인들이 다수 등장하고 

전체적으로 시집의 판매량 또한 증가하는 추세인 것 같다.

시를 통해 위로 받고 싶은 이들이 많아지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흔들린다> 우리는 좋아하는 것에 흔들리기도 하고 위험한 것에 흔들리기도 한다.

시에 등장하는 나무처럼 위험한 상황속에서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기도 하는 우리들.

무언가에 의해 흔들릴때마다 부들부들 떨면서 중심을 잃지 않으려는 우리네의 삶이 떠올라 눈물이 핑 돌았다.



"그들을 다스리는 일도 숨을 쉬는 일도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직장을 옮기는 일도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 

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고

가지 뻗고 이파리 틔우는 일이었구나"



때론 마음먹은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좌절하고 주저할때도 있지만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며 

나무처럼 중심을 잡고 가지를 뻗고 

이파리를 틔우며 버텨야지.



짠하기도 하고 위로가 되기도 한 

어떤 시인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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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파이 이야기 (특별판)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토미슬라프 토르야나크 그림 / 작가정신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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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개봉했던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원작 내용도 모르고 예고편의 영상미에 빠져 개봉 첫 날 혼자 달려가서 본 기억이 난다. 파이라는 이름을 가진 주인공 소년이 한마리의 호랑이와 함께 망망대해를 표류하던 장면. 맹수와 대치하던 긴장감 넘치는 장면과 은빛 물고기가 뛰어노는 밤바다를 여유롭게 유영하던 둘의 모습. 원작을 읽어보지 않은 덕분이라 해야하나 감동은 물론 충격도 더 했다.

소설 [파이이야기]는 2002년 맨 부커 상 수상작으로 현재까지도 전세계에서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스테디셀러이다. (무려 누적판매가 1000만부에 이른다고 ㄷㄷ)
덧붙이자면, 작가 얀마텔은 제7회 박경리문학상 최종후보자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즈오 이시구로를 포함한 쟁쟁한 후보들과 견주었다.)

 『파이 이야기』는 인도 폰디셰리 동물원 사육사의 열여섯 살 난 아들 파이 파텔의 이야기이다. 파이는 종교적인 광신도이지만, 자신이 어떤 종교의 광신도인지는 아직 확실히 알지 못한다. 대신 서로 다른 신앙들을 “파리들”처럼 끌어모으며 기독교와 이슬람, 힌두교를 동시에 믿는다. 파이의 아버지는 캐나다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결정하고, 파이네 가족은 동물들과 그 밖의 가진 것들을 꾸린 뒤 화물선에 오른다.

작가정신의 새로운 [일러스트 파이이야기]는 기존의 소설에 국제공모전에서 수상을 한 일러스트가 함께 담겨있어 그림을 보는 즐거움까지 안겨준다. 

중간에 흐름이 끊길까 책을 내려놓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소설.
영화를 먼저 본 것이 아쉬울 정도로 영상 이상의 표현력에 감탄해 마지 않았다.
표류하는 배 안에서의 숨막히는 전투, 살기 위해 사냥하는 파이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것은 물론 끝 없이 펼쳐진 무섭고도 아름다운 바다와 미어캣들이 살고 있는 섬의 모습을 실감나게 표현한 장면들은 경이로웠다.

소설은 총 3개의 챕터로 나뉘어져 있는데 2부인 ' 태평양' 부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 넘치는 표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사실 모든 소설이 그렇지만 특히 파이이야기 2부는 단숨에 앉은자리에서 끊지 않고 읽는 것을 추천한다.
망망대해에서 살아남기 위해 맹수와 공존하며 고군분투하는 파이의 모습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살펴보는 것이 즐겁기도 했고 자연의 신비스러운 모습들에 감격하기도 했다.


이 소설을 더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은 단순히 이 작품이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과 위기의 극복에 대한 파이의 모험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다들 알다시피 이 소설의 묘미는 바로 마지막 챕터. 그 한장의 챕터가 아주 소름끼치고 어마어마한 반전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잔인하고도 깊은 생각에 잠겨들게 하는 심오함을 담고 있는 마지막 챕터는 몇 번을 읽어봐도 엄청난 힘이 담겨있다.

워낙 유명한 소설이기에 이러쿵저러쿵 개인적인 소견을 더해가며 추천하기가 조심스러웠던 작품.
많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사랑을 받는 책은 이유가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주었던 작품이었다.

"그럼 말해보세요. 어느 이야기가 사실이든 여러분으로선 상관없고, 또 어느 이야기가 사실인지 증명할 수도 없지요. 그래서 묻는데요, 어느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드나요? 어느 쪽이 더 나은가요?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요. 동물이 안 나오는 이야기요?"
482p
"사랑한다!"
터져 나온 그 말음 순수하고, 자유롭고, 무한했다. 내 가슴에서 감정이 넘쳐났다.
"정말로 사랑해. 사랑한다, 리처드파커. 지금 네가 없다면 난 어째여 좋을지 모를 거야. 난 버텨내지 못했을 거야. 그래, 못 견뎠을 거야. 희망이 없어서 죽을 거야. 포기하지마, 리처드 파커. 포기하면 안 돼. 내가 육지에 데려다줄게. 약속할게. 약속한다구!"
35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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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 - 박상 본격 뮤직 에쎄-이 슬로북 Slow Book 2
박상 지음 / 작가정신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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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만에 정말 마음에 드는 책 그리고 작가를 만났다. 

음악다방의 네온사인이 떠오르는 듯한 감각적인 디자인의 표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것] 
게다가 농염한 제목까지.
달콤하고 끈적한 사랑을 겪어보지 못한터라... 가슴 깊이 와닿지는 않았지만 별안간 마음이 동할만큼 매력적인 제목이다.
게다가 그냥 에세이도 아니고 무~려! 뮤직에세이.

음악에세이 답게 목차도 SideA와 B로 나뉘어 각 장을 트랙리스트로 기록한 것이 센스있다. 
잘 때 말고는 하루종일 음악을 틀어놓는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음악을 좋아하는 내게 주옥같은 곡들이 담겨 있는 이 책은 (최근 벅스뮤직의 30곡 다운로드도 채우지 못할 만큼 음악에 갈증을 느끼는 중이다...) 선물과도 같았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사실 나는 지극히 센티멘탈하고 센서티브 한 사람이면서도 반면에 웃기고 싶어하고 아재개그를 좋아하는 퍽 유쾌한 사람이다. 처음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저자와 내가 조금 닮아있다는 점. 
쓸쓸하고 고독한 감성을 지니면서도 괜히 울적해서 울고 싶어 슬픈 음악을 듣다가도 우울함을 참지 못하고 독자를 피식피식 웃게 만드는 개그본능의 소유자. 작가에게 동질감도 많이 느꼈고 그래서 더 책에 푹 빠졌을 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다보면 (특히 작가의 사견이 담겨있는) 가치관이나 감성이 맞지 않아 책을 덮을 때도 있고 막연히 답답함을 느낄때도 있는데 마음과 감성, 그리고 음악적 취향을 공유할 수 있는 작가를 만나다니.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작가는 세계곳곳에서 겪었던 일, 그리고 만났던 사람들에 관해 얘기를 털어놓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보냈던 시간들을 회상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곁에는 그 순간에 함께 했던 음악들이 있다.
(트랙리스트는 전부 들어보았다. 모든 곡들이 주옥같으니 꼭 모두 들어보세요!) 
헤비메탈, 브리티쉬팝, 대중가요, 클래식까지 다양하게 담겨 있는데 전문가 못지 않은 음악적 지식까지 담겨있어 볼꺼리가 다양하다. 

저자는 감성을 물론이고 음악적 취향까지 나와 비슷해서 여러번 놀랐는데 특히 버스커버스커의 [봄바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챕터에서는 반갑고도 놀라웠다.
이 곡은 그들의 1집 음반이 나왔을 때부터 즐겨듣던 곡이었는데 리얼리티프로의 bgm으로 자주 깔려
많은 이들에게 아마도 익숙한 곡일터. 하지만 intro와 같은 연주곡이라 버스커버스커의 곡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 다들 들어보면 아 이 곡! 할 거다.
이 곡을 아는 사람을 만나 반갑기도 하고 새삼 벚꽃 흩날리는 봄날이 떠올라 감상에 젖기도 하는 시간이었다.

음악을 참으로 좋아하지만 성격 못지 않게 청각도 예민한 나는... 
고풍스러운 한옥카페에서 흘러나오는 EDM이라던지 길거리에서 상가들끼리 경쟁하듯 있는대로 크게 틀어놓은 댄스음악에 지칠 때가 있다. 때로는 카페나 레스토랑의 음악보다 백화점 화장실에서 흘러나오는 모차르트의 음악이 더 위안이 될 때가 있다는 작가의 말에 큰 공감을 느꼈다. 

아이돌도 좋아하지만 어릴 적 엄마와 함께 듣던 7080 세대의 음악도 참 좋아하는 데 그 중 단연 산울림을 가장 좋아한다. 최근 리메이크 되고 있는 그들의 음악도 세련되고 좋지만 날 것의 느낌이 나는 그 시대의 음악을 더 사랑한다. (청춘은 김필이 아니라 김창완이 부른 것이 더 슬프다...그리고 리메이크 곡들은 대부분 원곡이 훨씬 좋다.) 작가가 소개해 준 아티스트 중 김창완이나 김광석의 구슬픈 감성을 떠올리게 하는 아티스트가 있었는데 바로 시그널OST를 부른 '정착식'
드라마를 보지 않아 노래도 처음 접했는데 보이스는 물론이고 중간중간 울리는 일렉기타의 구슬픈 소리, 한편의 시를 떠올리게 하는 가사까지 

그의 앨범들을 틀어놓고 운전하면 신묘하게도 우수에 찬 예술영화 속에 들어가는 기분이 된다.
듣는 이의 배경을 현실에서 영화로 바꿔버리는 공감각 능력자를 전문 용어로 아티스트라 부르지 않던가. 과연 그의 목소리가 품은 비애감과 폭발성에 촉촉이 젖으면 비루한 일상과, 삶의 못생김이 알아서 스르륵 꺼지며 그 자리에 예술적인 위안이 생명처럼 움트고 만다. 고로 울적한 기분의 황망함에 빠지고 말았을때, 혹은 어쩐지 우수에 흠뻑 젖고만 싶을 때 정차식의 솔로 앨범들은 몹시 알맞다. 특히 비 오는 날, 가슴속에 우수의 신호등이 어둡게 켜질 때 이마에 손을 짚고 정차식의 음악들을 들으면 그냥 끝내준다. 그의 음악들은 착잡한 쓸쓸함조차 예술로 승화시키는 마법을 꼭 부린단 말이지.
261p

포스팅을 하는 내내 저자의 트랙리스트와 함께 했다. (그래서 의식의 흐름대로...) 사랑을 할 때에도, 이별을 할 때에도, 힘든일을 겪어 위로받고 싶을 때에도, 울고 싶을 때에도 어쩌면 우리는 음악과 함께 한다. 때로는 친구보다 더 큰 위로가 되어주는 음악들. 좋은 음악을 소개해 준 작가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뮤지션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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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의 시민들 슬로북 Slow Book 1
백민석 글.사진 / 작가정신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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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1




여행은 참으로 좋아하지만 여행에세이는 잘 보지 않는 편. 여행을 가기 전 가이드북을 읽는 것 외에는 여행에 관한 서적은 한번도 접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독자가 마치 직접 보고 겪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화자를 '당신'이라 지칭하는 독특한 설정. 그 덕에 쿠바로 여름휴가를 다녀온 듯한 기분을 느꼈던 특별한 책이었다.

사실 이 책은 제목에 나와있듯이 [아바나의 시민들] 즉, 쿠바 혹은 아바나의 여행기라기보다 그 곳의 시민들에 초점을 맞추어 쓴 수필이다. 낯선 장소에서 만난 그 곳의 사람들. 그 들의 표정, 감정, 삶을 가까이에서 보고 느낄 수 있는 글. 
잔뜩 꾸며낸 듯한 화려한 포토북이 아니라 더 마음에 들었다. 저자가 길을 걷다가 마음에 드는 사진을 한컷한컷 찍어낸 자연스럽고 거친 느낌의 사진들을 담아두어 아바나의 모습을 더 실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쿠바에 대해선 사전정보가 없었던 터라 아바나란 도시 자체는 조금 낯설었지만, 아는 것이 없어도 아바나의 소탈하고 솔직한 사람들을 만날 준비만 되어 있다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저자 백민석님은 이번 책으로 처음 알게 되었는데 서정적이면서 고독한 느낌의 사색적인 문체가 마음에 쏙 들었다.

글도 글이지만 바로 앞에서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시민들과 교감을 나누는 모습들이 좋았는데 그 중 인상 깊었던 몇 가지 장면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풍족하진 않지만 치열하지 않고 여유로운 사람들.
거리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즐기는 사람들을 보며 오히려 마음의 풍요를 느꼈다.


 



정말 좋아하는 사진.
이 책의 가장 좋았던 점이라고 할까, 사진들마다 밝게 웃으며 즐거워 하는 아바나의 시민들. 





재즈클럽에 가는 걸 참 좋아한다.
낮은 음으로 둥둥 울리는 베이스와 목관악기의 조화로움.
특히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본 사람이라면 반가울 듯한 클럽의 공연 모습.



최근의 나는 한 가지 목표가 생겨 조금 치열해졌다. 바쁘게 살다보니 마음의 여유도 달아난 것이 사실.
휴식시간에는 스마트폰과 웹서핑을 하며 무의미하게 시간을 허비하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좋아하는 장소에 놀러가면 감상을 하기보다 사진을 찍기에 바쁘게 살아왔다.
와이파이도 잘 잡히지 않는 곳에서의 초라하고 고독한 여행이 그 어느 것보다 가치있고 위대해 보였다.
물질의 풍요는 없지만 마음만은 차고 넘치는 밝은 표정의 [아바나의 시민들].
나는 정작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잊고 사는 건 아니었을까.







이 늙고 단순하고 물러설 줄 모르는 불굴의 낚시꾼 같은 말레콘은, 19052년부터 당신 같은 여행객들을 상대해왔다. 말레콘은 즐거움만을 주지 않는다. 고통은 말레콘이 준비한 또 다른 선물이다. 목마름과, 이런저런 사고와, 격렬한 햇볕에 반비례하는 어두운 상념 속에서 문득 당신은 중얼거리게 된다. 고통과 즐거움은 서로 다르지 않으며 에스프레소의 쓴맛처럼 고통이 때론 즐거움의 풍미를 더 깊게 할 것이라고.
53p

당신은 끝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보면서, 실은 당신 자신을 보는 것이다. 당신의 실존에 끊임없이 그어지는, 그러면서도 금세 스러지곤 하는 주름을 보는 것이다. 상념, 행복했던 한때이든, 불행했던 한때이든, 또 미래의 행복이나 불행에 대한 불안까지 드리워진 상념에서 당신은 헤어날 길이 없어진다. 말레콘에서 당신은 상념에, 당신 자신에 중독된다. 알면서도 당신은 말레콘의 산책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다음 날에도 다시 찾는다. 당신은 당신 자신의 삶이 주는 옅은, 희박한 고통을 놓고 싶지 않다. 삶의 고통은 아직 참을 만하고, 심지어 적당히 즐길 만하다.
56p

무엇보다 그들 자신이 아바나에서 가장 볼만한 피사체인데, 사진은 휘발될 운명의 추억에 물성을 부여해, 한정된 형태로나마 현실에 붙잡아두는 역할을 한다. 당신은 그러니까 그들을 당신의 남은 생애만큼 당신 곁에 붙잡아두고 싶었던것이다. 어떤, 궁극적인, 아름다움의 표상으로.
76p

카메라를 잃은 다음 얻은 당신의 저렴한 깨달음은 일주일을 버티지 못한다. 당신은 기계 눈으로부터 해방 되는 것보다 기계 눈에 복종하고 기계 눈을 신뢰하는 편이 훨씬 많은 것을 가져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기계 눈을 쓰지 않자 시야는 넓어졌지만 저장은 할 수 없었다. 당신의 기억력은 믿을 수 없고 당장 망각이 걱정스럽다. 혹자는 사진에 찍힌 것만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지만, 사진 없는 추억들은 언젠가 휘발되어, 오염되고 왜곡된 흐릿한 흔적만 남게 되지 않을까.
171p

사람들은 숲을 보라고 하지만, 숲을 보려면 일단 숲에서 나와야 한다. 아바나에서도 그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당신은 너무 세계 안쪽에서만 부대끼며 살았다. 그런 삶이 당신의 시야를 기계 눈의 디스플레이 틀 속에 한정 지어 놓았는지도 모른다.
26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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