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의 진화 - 이기적 개인의 팃포탯 전략
로버트 액설로드 지음, 이경식 옮김 / 시스테마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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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가 적극 추천한 책이어서 당연히 진화생물학자의 저서로 알았던 이 책은, 미시건대학교 정치학과 교수인 로버트 액설로드가 ‘죄수의 딜레마‘를 기반으로 어떻게 개체나 집단 간의 협력이 발생하고 공고해지는지 증명하는 책이다. 죄수의 딜레마를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두 명의 죄수가 각자 격리된 상태에서 심문을 받을 때, 둘 중 하나가 배신하고 자백하면 자백한 사람은 풀려나고 자백하지 않은 사람은 10년형을 받는다. 둘 다 서로 배신하여 자백하면 각자 5년형을 받는다. 둘 모두 자백하지 않으면 둘 다 6개월 형을 받는다. 이 상태에서 서로에게 가장 이득이 되는 선택은 서로 배신하지 않고 6개월 씩 형을 사는 것이지만, 상대의 정보가 차단되어 있고 상대가 배신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없으므로 상대가 배신하든 안 하든 나는 배신하는 게 최선의 선택이 된다.
하지만 이 죄수의 딜레마에서 1번만 선택해야 할 때는 배신이 최선의 선택이 되겠지만, 이런 선택 상황이 계속 반복되고 지금 만난 상대방을 언제 또 만나게 될지 모른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서로 협력하여 이득을 얻는 편이 다시 또 만날 가능성이 높은 상대를 배신하는 것보다 낫다.
액설로드 교수는 이를 바탕으로 전 세계의 게임이론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컴퓨터 죄수의 딜레마 대회‘를 두 차례 개최한다. 전문가들이 만든 프로그램끼리 서로 돌아가면서 한 차례씩 대전을 치러서 가장 많은 점수를 얻은 프로그램이 우승하는 대회다. 첫 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가장 단순한 팃포탯(Tit For Tat)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 팃포탯은 우선은 상대와 협력하지만, 상대의 반응에 따라 대응이 달라진다. 상대가 협력하면 다음 번에도 협력하지만 상대가 배신하면 바로 배신으로 응징한다. 두 번째 대회에서는 첫 대회의 결과를 모두 알고 있었기에 좀 더 발전된 프로그램들이 참가했지만, 이번에도 우승은 팃포탯이었다.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강력한 프로그램인 것이다.
흥미로운 건 두 대회 모두 상위권에 든 프로그램들은 팃포탯처럼 협력 위주의 신사적인 프로그램이었다는 거다. 우리가 인지하는 자연은 약육강식의 세계여서 배신이 횡행하고 강자만이 살아남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간단하다. 배신이 횡행하는 세계에 조금이나마 협력을 할 줄 아는 개체들이 나타나면 이들 상호간에는 협력을 통해 배신보다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변의 개체들도 이들을 모방하여 협력을 발전시키기 때문에 결국엔 협력하는 개체들이 대세가 되는 세계가 된다. 단 여기엔 아주 중요한 전제가 있다. 앞에서 말했듯 상대를 앞으로 만날 가능성이 충분히 커야 한다. 딱 한 번만 만날 사이라면 배신이 최선의 선택이다.
이 점은 회사의 임원들이 왜 그리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지를 시사한다. 어차피 2년 내에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면 더 이상 기회가 주어지기 힘들기 때문에 전체 조직의 건강 따위는 상관하지 않는다. 즉, 임원은 조직을 배신하는 것이다.
협력은 개체 또는 집단의 선악과 상관없이 일어난다. 협력은 최선의 이득을 얻기 위해 상대와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촉진되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생존전략들이 경쟁하며 진화하는 과정에서 결국 자기 이득을 최대화하는 전략이 살아남고 그것이 팃포탯이라는 걸 저자는 두 차례의 죄수의 딜레마 대회, 그리고 역사적 사례와 생물계의 협력 사례를 통해 증명한다. 세상은 대개 제로섬 게임의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호혜주의가 번성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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