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 인류학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속담으로 세상 읽기 지식여행자 14
요네하라 마리 지음, 한승동 옮김 / 마음산책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요네하라 마리의 이번 에세이의 주제는 속담입니다. 누구나 어릴 때 한 번쯤 보았을 속담집은 속담과 그 뜻을 나열하고 거기서 얻는 교훈을 살펴보는 형태로 되어 있었죠. 이 책은 조금 다릅니다. 스물 아홉 개의 챕터로 되어 있는데요. 챕터의 양식이 일정합니다. 일단 예전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나왔을 법한 꽁트(근데 이게 좀 강도가 셉니다. 음담패설까지는 아닌데 부부 사이의 외도 같은 은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를 한 꼭지 보여주고, 그에 걸맞는 요네하라 마리가 수집해온 세계 각국의 속담을 펼쳐놓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중국, 일본이나 유럽의 속담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남미, 중앙아시아, 중동 각국의 속담, 심지어는 동남아 소수민족의 속담까지 엄청난 분량의 속담들을 보여줍니다. 물론 한국의 속담도 나오죠. 하지만 단지 보여주는데에서 그치지 않고 속담의 기원을 추적하여 그리스 고전이나 셰익스피어 작품까지 파고 들어가는 걸 보면 경탄스럽습니다.


그러나 이 책이 가지는 진가는 이 다음에 나타납니다. 한 편의 콩트를 보여주고, 이에 관련된 속담을 늘어놓은 후, 갑자기 시사 평론의 영역으로 들어갑니다. 아니, 시사평론이라기보다는 `부시와 고이즈미 신나게 까기`라고나 할까요. 에세이를 잡지에 연재하던 당시, 부시가 대테러전쟁을 선포하고 이라크에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를 내놓으라며 쳐들어가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고이즈미는 미국에 딱 달라붙어 굽신거리며 미국의 요구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굴욕적 외교를 벌이고 있었죠. 요네하라 마리는 스물 아홉 개 챕터 대부분에서 이 둘을 맹렬히 비판합니다. 부시는 미 대통령 자격 미달인 저능아, 고이즈미는 부시의 애완견이자 매국노라고 읽는 사람이 다 조마조마할 지경으로 독설을 내뿜습니다. 대단한 기백을 가진 여장부죠.


이를테면 이런 식입니다.

˝부시가 그 원숭이 같은 얼굴이 붉어지도록 열을 올리며 후세인을 힐난하는 텔레비전 화면을 볼 때마다 `뒤가 구린 자일수록 의심이 많다`라는 이탈리아 속담을 떠올린다. 그 다음 순간 과연 부시의 뇌수에서 ‘뒤가 구리다’와 같은 고등한 감정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사로잡히긴 하지만.˝

˝그런 일본을 ‘개’나 ‘바둑이’라고 멸시하는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건 실례다. 개에게 말이다. 개는 무력하고 제구실 못 하는 주인에게조차 평생 충성하지만 일본이 몸과 마음을 바쳐 받들어 모시는 건 어디까지나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는 나라. 이왕 기댈 양이면 힘센 자에게 기대야 할 것 아닌가. 도와달라고 구걸할 때도 이왕이면 힘센 자한테서 더 크고 안전한 도움을 받는 게 영리한 거다. 원래 `이왕 기댈 바엔 큰 나무 밑이 안전하다`는 건 그런 처세를 두고 하는 이야기다. 단순한 충견만으로는 안 된다. `개가 될 양이면 부잣집 개가 되어라` 하는 거다.˝


요네하라 마리의 아버지는 일본 공산당의 핵심인물이었다고 합니다. 요네하라 마리가 어린 시절 프라하 소비에트 학교에서 수학한 것도 일본 공산당에서 아버지를 프라하로 파견 보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죠.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요네하라 마리도 일본 사회의 경직된 정치·경제·문화에 대단히 비판적입니다. 하지만 비판 속에도 적절한 유머와 조크를 섞어 독자의 얼굴에 미소를 띠게 하는 그녀의 글재주는 경탄스럽습니다.



지금까지 연속으로 요네하라 마리의 책 세 권을 읽고 서평을 썼는데요. 오늘 소개해드리는 <속담 인류학>이 그 중 제일 괜찮았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으면서도 다시금 생각을 곱씹게 해주는 매력이 있는 책입니다. 일독을 권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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