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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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 만큼 두루두루 장르를 가리지 않고 글을 잘 쓰는 작가는 흔치 않다. 특유의 해학적인 문체를 종횡무진 발휘해 중국의 정치, 사회, 문화를 풍자하고 통렬히 비판하는 그의 글에선 언뜻언뜻 루쉰의 모습이 비친다. 우리는 그의 소설 주인공들에게서 어렵지 않게 아Q의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위화의 에세이도 마찬가지인데, 문혁 시절을 그리는 에세이를 읽고 있노라면 절로 씁쓸한 웃음을 짓게 된다.

하지만 이 책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은 여태까지 읽어 본 위화의 책과는 완전히 결이 다르다. 문학과 음악의 클래식에 대한 비평 모음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심오한 경지를 나로서는 도저히 따라가기 힘들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내가 알고 있던 그 위트넘치는 위화가 맞는지 의문이 들 지경이니까.

제목에 선율이 들어가기는 하나 번역 과정에서 대구를 맞추기 위한 것일 뿐, 이 책의 주된 재료는 ‘서술’이다. 위화는 소설가들의 작품 서술 기법과 그에 따른 차이를 비교 분석하고, 작곡가들이 음률로써 자신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떻게 서술하는지를 말한다. 소설 파트에서는 포크너와 보르헤스, 체호프와 카프카, 도스토옙스키, 스탕달, 마르케스 등을 다루고, 음악 파트에서는 차이콥스키, 브람스, 쇼스타코비치, 멘델스존, 라흐마니노프 같은 작곡가들을 비평한다. 이 중 백미는 2차대전 레닌그라드 전투 중 쇼스타코비치가 작곡한 <교향곡 7번>의 1악장과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 글자>의 서술을 비교하는 글이다. 두 작품 모두 ‘단일한 정서의 주제가 끊임없이 변주‘되면서 연약했던 서술이 크레셴도로 점점 강대하게 키워진다고 위화는 분석한다. ‘가장 천진하고 단순한 동시에 가장 강력한‘ 이런 서술 방식으로 인해 ‘최후의 클라이맥스에 이르렀을 땐 인생의 무게와 운명의 광활함까지 드러낸다‘. 끊어질 듯 팽팽한 현처럼 긴장된 서술은 독자와 청자를 클라이맥스에서 어쩔 줄 모르게 만든다. 그렇게 격앙된 클라이맥스에서 돌연 이어지는 온화하고 차분한 감정의 해방은 격렬했던 서술에서 벗어나 독자 그리고 청자를 구원한다. 이 정도면 어떤 게 소설이고 어떤 게 음악인지 구분할 수 없는 비평의 경지가 아닐까. 라흐마니노프의 음악, 칸딘스키의 그림,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소설에서 공감각적 색채 분석까지 끌어내는 글에 이르면 이 위화라는 사람에 대한 경탄을 넘어 두려움까지 든다.

해학의 장막으로 둘러싸여 있던 그의 진정한 대가로서의 풍모를 이 책이 아니었다면 절대 알 수 없었으리라. 하지만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위화가 쌓은 만큼의 고전 소설과 클래식 음악에 대한 소양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위화가 말하는 바의 10분의 1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을 테니까. 내가 바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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