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뇌 - 뇌의 새로운 이해 그리고 인류와 기계 지능의 미래
제프 호킨스 지음, 이충호 옮김 / 이데아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꽤 흥미로운 책이다. 하지만 흥미롭다고 해서 이 책에 기술된 모든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이 책은 스스로 뇌과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자부한다. 마침내 인간의 지능이 어떻게 발현되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찾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리처드 도킨스의 추천사까지 붙어 있으니 혹할만 하지 않은가. 적어도 생짜 엉터리 주장은 아닐거라는 최소한의 신뢰감을 줄 수 있으니.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1부는 뇌에서 지능이 발현되는 메커니즘에 대한 이론, 2부는 인공지능의 미래와 위험성의 고찰, 3부는 인류의 미래에 큰 위협이 되는 ‘틀린 신념‘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계획이다. 지금부터 이 책을 찬찬히 살펴보자.

저자 제프 호킨스는 엄밀히 말해 정규 학위 코스를 제대로 밟은 뇌과학자가 아니다. PDA로 한때 명성을 날린 IT 기업 팜(PALM)의 CEO였다가 뇌를 연구하려는 열망으로 뇌과학 연구에 뛰어들어 연구소를 설립한 사람이다. 그의 신경과학 연구기업 누멘타에서 내놓은 게 이 ‘천 개의 뇌‘ 이론이다. 두뇌 가장 바깥쪽의 신피질은 약 1만 5천개의 피질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피질기둥들은 다양한 세계 모형(‘기준틀‘이라고 부른다)을 끊임없이 만들고 수정한다. 우리가 사물과 세계를 인식하는 것은 감각기관이 아니라 이 피질기둥의 세계 모형이 작동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한밤중에 불꺼진 화장실을 더듬더듬거리면서도 불편없이 갈 수 있는 건, 우리 뇌의 피질기둥 어딘가에 화장실의 세계 모형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간다면 이 화장실 세계 모형에 수정이 가해진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수없이 많은 세계 모형을 운영하고 외부의 변화에 맞추어 세계 모형을 수정한다. 그리고 이 세계 모형은 수천 개의 피질기둥에 조금씩 다른 형태로 분산 수용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의 뇌는 새로운 외부자극에 반응하거나 학습할 때 이 수천 개의 피질기둥이 각자 갖고 있는 세계 모형을 바탕으로 합의를 통해 결과를 도출한다고 주장한다. 즉, 우리 뇌에서는 매 순간순간 끊임없이 투표가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제프 호킨스는 현재의 인공지능 연구가 크게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요 몇 년 딥 러닝이, 최근엔 거대언어모델(LLM)이 AI의 열풍을 재점화했지만, 저자는 이 방식들은 근본적으로 대량의 통계 데이터에 의존하는 접근법이어서 세계 모델을 갖고 있지 않으므로 근본적인 지능의 구현엔 실패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진정한 AI는 인간 두뇌의 작동방식을 모방해야만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그는 최근 대두되고 있는 인공지능의 실존적 위험 - 인공지능이 인간 지능을 아득히 뛰어넘어 결국 인류를 멸종시키고 말 거라는 - 에 대해서도 논박한다. 첫째, AGI(일반인공지능)이 구현되어 인간의 두뇌보다 몇 만배, 몇 십만배의 속도로 동작하더라도, 결국 현실 세계와 상호작용해야만 학습을 할 수 있으니 그 물리적 한계 때문에 인공지능이 특이점을 넘어 폭발적으로 발전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둘째, 인공지능은 그 자체로는 동기가 없다. 인간이 동기를 심기 전엔 말이다. 자율주행차가 스스로 목표를 만들지는 않잖은가. 우리 스스로 인류를 파멸시킬 목표를 인공지능에 심을 이유가 없으니 그 위험성도 적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지금까지 살펴 본 지능이 어떻게 인류의 미래에 위협이 되는지를 말한다. 우리 뇌의 세계 모형은 대체로 정확하지만, 때로는 틀린 세계 모형이 구축되기도 한다. 여전히 지구가 편평하다고 믿는다든가, 기후 변화는 사기라든가, 달 착륙은 날조라든가. 이 그릇된 믿음들(틀린 신념)의 공통점은 물리적으로 확인이 힘들고, 바이러스처럼 전염성을 갖고 있으며, 당장 살아가는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구편평설 정도는 웃어넘길 수 있지만 기후 변화는 그렇지 않다. 이외에도 앞으로 등장할 수많은 틀린 신념들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것이라 저자는 확신한다.

우리의 오래된 뇌(신피질을 제외한 뇌 부위들을 지칭한다)는 생존에 관여한다. 그래서 이 오래된 뇌가 인류의 영속에 꼭 필요한 인구 감축이나 핵무기 폐기를 막고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인구를 늘리는 것, 그리고 전쟁을 하는 것이 내 유전자의 확산에 유리하기 때문에 오래된 뇌는 인류의 장기적 존속에 필요한 행위를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신피질이 갖고 있는 지능으로 오래된 뇌를 제어해야 한다고 제프 호킨스는 주장한다.

그럼 지금부터 이 책을 비판해 보자.

제프 호킨스는 신피질에만 지능이 있다고 가정하고 논지를 전개한다. 이는 다소간 삼위일체 뇌 이론과 맞닿아 있으며 이전에 리뷰한 신경과학자 리사 팰드먼 배럿의 견해와 상충된다. 리사 팰드먼 배럿은 뇌를 파충류의 뇌, 포유류의 뇌, 영장류의 뇌로 구분하는 삼위일체 뇌 이론의 허구성을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에서 철저히 논파한 바 있다.

그리고 제프 호킨스는 오직 지능의 영역에만 초점을 맞추고 신피질의 지능이 절대선인양 주장한다. 이는 근대 계몽주의를 연상시키는데, 이성만능주의가 얼마나 위험한지는 굳이 세계사를 들춰보지 않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또한 저자는 지능이 발달한다고 저절로 동기가 생성되지는 않는다며 AI의 발전이 인류에게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 주장했지만 과연 그럴지는 의문이다. 인간이 AI에게 학습시키는 데이터가 AI에게 편향을 일으킬 가능성이 과연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몇 년 전, MS의 챗봇이 인종차별적 언사를 쏟아냈던 해프닝만 봐도 저자의 이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그리고 인류가 인구 감축이나 핵무기 폐기를 하지 못하는 게 오래된 뇌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게 타당한가? 오히려 신피질의 이성의 결과물이 아닌가? 저자는 신피질이 항상 옳은 판단을 한다고 믿는 듯 하다. 그렇지 않다는 걸 반증하는 무수히 많은 역사적 사례가 있는데도 말이다. 근대 계몽주의가 제국주의의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는 사실을 잊었는가?

서두에 말했듯, 흥미있는 책이지만 동의할 수 있는 책은 아니다. 그리고 다소 나이브하고 위험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