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의 시간 - 길 잃은 물고기와 지구, 인간에 관하여
마크 쿨란스키 지음, 안기순 옮김 / 디플롯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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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연어는 그리 익숙한 물고기가 아니었다. 고등어나 갈치, 조기 처럼 우리 바다에서 잡히는 생선이 아니어서 그렇다. 연어는 저멀리 북대서양 노르웨이에서 비행기로 날아오는 귀한 몸이라 뷔페에서나 가끔 먹을 수 있는 귀한 생선이었다. 지금도 가격이 그리 만만치는 않아서 집에서는 가끔 스테이크로나 해먹는 생선이다.

그러나 서구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으러 연어들이 강을 거슬러 오는 계절이 되면 강에 그물만 쳐도, 아니면 낚싯대나 작살 하나만 있어도 무진장 연어를 잡을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이렇게 잡은 다음 염장하거나 훈제해서 보관한 연어는 서구 요리의 주요한 식재료였다. 위도 상 연어가 회유하지 않는 우리나라와는 연어를 대하는 태도가 다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 연어가 멸종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연어의 시간>에서 마크 쿨란스키는 말한다. 무슨 이유일까? 연어가 남획되어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할 수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 연어가 돌아오는 강을 ‘연어 강‘이라 부르는데, 연어 강이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연어가 포식자들을 피해 강을 거슬러 갈 수 있도록 좁고 물살이 세어야 하며 - 굽이진 강일 수록 더 좋다 - 이런 강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숲이 울창한 강둑이 있어야 한다. 또한 연어의 먹이가 되는 곤충이 살 수 있도록 낙엽이 가득 쌓여 있어 유기물이 풍부해야 한다.

이런 조건들을 찬찬히 살펴보고 있노라면 곧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연어 강이 되기 위한 조건은 곧 산업화를 위한 조건과 정반대라는 것을 말이다. 산업화를 위해선 물류에 적합한 넓고 천천히 흐르는 강이 필요하다. 게다가 강가에 공장을 짓고 벌목을 하게 되면 강둑의 숲은 금세 사라진다. 배가 다니기 위해선 강이 깊어야 하니 강바닥에 쌓인 유기물을 준설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산업혁명 이후 영국의 연어는 거의 사라졌지만, 역셜적으로 영국이 산업화를 방해한 아일랜드는 연어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지금 미국에서는 알래스카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강에서 연어를 찾아볼 수 없다. 미국의 연어는 인디언과 비슷한 운명을 맞았다. 자연을 정복과 착취의 대상으로 보았던 서구인들의 시선으로는 연어를 존중하고 심지어 숭배하는 인디언들은 한심한 족속에 불과했다. 인디언들을 그들의 땅에서 내쫓았듯, 연어들의 고향인 강을 파괴한 대가로 더 이상 연어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제 와서 댐을 철거하고 부화장을 설치하는 노력을 뒤늦게 하고 있지만 연어가 예전처럼 강을 가득 메우려면 앞으로 100년은 족히 걸릴 것이라는 예상이다.

마크 쿨란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연어는 지구의 건강을 가늠하는 일종의 지표라고. 다들 알다시피 연어는 호수와 강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바다로 나가 몇 년 간 살을 찌우고 다시 고향의 민물로 돌아와 알을 낳는 소하성 어종이다. 그래서 연어는 해양생태학과 지구생태학 사이에 일종의 연결고리가 되어 우리가 육지에서 벌이는 활동들이 어떻게 바다에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할 수 있게 돕는다. 산업혁명으로 촉발된 지금의 기후 변화는 찬물에 사는 어종인 연어를 질식시키고 있다. 바다와 강을 아우르는 거대한 먹이사슬의 한가운데에 연어가 있기 때문에, 지구온난화로 인한 연어의 멸종 위기가 우리 생태계에 미칠 영향은 자명하다. 하여, 연어를 구하기 위한 노력은 곧 우리와 지구를 구하는 노력이다. ˝우리가 지구를 구할 수 있으면 연어도 괜찮을 것˝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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