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도서관 - 책과 영혼이 만나는 마법 같은 공간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강주헌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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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고요하다. 아침의 분주함도, 한낮의 나른함도, 저녁의 한가로움도 사라진 시간. 대기를 떠돌던 소음이 가라앉고 양감을 가진 어둠이 주위를 휘감을 때, 우리는 이제 책 속으로 잠수할 시간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다. 마치 비좁은 심해 탐사 잠수함에 탑승한 것처럼, 조그만 의자에 푹 파묻혀 라이트를 켜고 책이라는 깊은 바다의 페이지 곳곳을 항행하는 독서가들. 알베르토 망구엘은 이들을 위해 도서관의 기원과 역사, 철학, 건축,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방대한 독서량을 바탕으로 한 그만의 박학다식함을 가지고.

지금, 도서관을 말하는데 알베르토 망구엘 만큼 적합한 사람이 또 있을까. ‘세계 최고의 독서가‘, ‘책의 수호자‘라 불리는 이답게 그가 이 책에서 풀어내는 도서관 이야기들은 어디서도 들어 본 적이 없는 것들이다. 그의 다른 책 <독서의 역사>를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대체 얼마나 책을 읽어야 이 정도의 지식을 쌓을 수 있을런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흔히들 ‘구글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하지만, 알베르토 망구엘이 평생을 꼭꼭 씹어 소화해낸 지식들은 웹을 아무리 뒤져 봐도 도저히 찾을 수 없다. 그가 머릿 속에 쌓아 올린 지식의 바벨탑을 속속들이 들여다 보고 싶을 지경이다.

그가 이 <밤의 도서관>을 쓰게 된 건 프랑스 시골 마을의 조그만 사제관을 사들여 개인 도서관으로 개축하면서부터다. 반세기 동안 수집한 책들을 한데 모아 도서관을 꾸미면서 이 책을 구상하게 된 것이다. 그는 신화, 정리, 공간, 힘, 그림자, 형상, 우연, 일터, 정신, 섬, 생존, 망각, 상상, 정체성, 집이라는 상이한 열 다섯 개의 주제로 도서관을 다각도에서 조명한다. 수없이 많은 사상가들, 작가들, 역사적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말이 인용된다. 이를테면 버지니아 울프가 말하는 학자와 독서가의 차이가 다음과 같이 소개된다.

‘학자는 앉아서 집중하는 고독한 사람으로, 자신이 열망하는 특별한 진리의 씨앗을 찾아 책을 열성적으로 뒤적거린다. 책을 읽는 재미에 빠지면 그가 얻으려는 소득이 줄어들고, 힘들게 얻은 것마저 부지불식간에 빠져나간다. 반면에 독서가는 처음부터 뭔가를 배우려는 욕심을 억눌러야 한다. 책을 읽다 보면 지식이 어쩔 수 없이 더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지식을 계속 추구하고 체계적으로 독서하며 전문가나 권위자가 되려 한다면, 순수하고 사심 없는 독서를 향한 한층 인간적인 열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마음가짐은 사라지기 십상이다.‘

망구엘은 말한다. 모든 서재는 궁극적으로 에우테미아를 갈망한다고. 세네카에 따르면 에우테미아는 ‘영혼의 행복‘을 뜻하는 그리스어이다. 에우테미아는 방해받지 않는 기억이며, 글을 읽는 시간의 편안함이다. 고요한 밤, 우리는 각자의 도서관에 앉아 에우테미아를 좇으며, 책이 제시하는 무수한 통찰의 순간을 찾으며 활자들 사이를 조용히 거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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