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장소, 환대 현대의 지성 159
김현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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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이나 두께 등 외형만 보고 만만하게 생각할 수 있으나 기실은 그리 간단치 않다. 아니 간단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꽤나 어려운 책이다.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는 게 아니라, 마치 물 속에 들어가기 전 깊이 심호흡을 하고 준비를 하듯 마음을 가다듬고 글줄 하나하나를 손가락으로 더듬어 가며 읽어야 하는 책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저자가 인류학을 전공한 학자이지만 이 책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인류학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저자가 책 내내 뒤르켐, 고프먼 같은 사회학자와 루소, 푸코, 아렌트 등의 철학자들을 소환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핵심을 아주아주 거칠게 요약하면 ‘사람이 물리적 공간으로 존재하는 사회의 성원으로 인정 받는 조건은 사회를 구성하는 타자들로부터 무조건적인 환대를 제공받는 것이다‘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이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이 책의 키워드는 사람, 장소, 그리고 환대이다. 이 세 개념은 맞물려서 서로를 지탱한다. 우리는 환대에 의해 사회 안에 들어가며 사람이 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장소를 갖는다는 것이다. 환대는 자리를 주는 행위이다... 현대 사회는 우리가 잘살건 못살건 배웠건 못 배웠건 모두 사람으로서 평등하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우리를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매일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는 대접이다. 사람행세를 하고 사람대접을 받는 데 물질적인 조건들은 여전히 중요하게 작용한다.˝

핵심 메시지 자체는 지극히 당연하고 쉬워 보이나, 이 책의 진가는 저자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치열하게 전개되는 철학적 논증에 있다. 이 책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고. 하지만 책의 미로에서 길을 잃지 않고 논리 전개를 조심조심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부터 저자가 펼치는 굳세고 치열한 사유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된다. 저자인 김현경은 위에서 언급한 쟁쟁한 사회학자나 철학자들의 언술에 숨어 있는 허점을 일일이 논박하고 자신의 주장을 찬란하게 피워 낸다.

이 책이 갖는 또 하나의 큰 장점은 작금의 사회 현상을 해석할 수 있는 훌륭한 틀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최근 벌어진 MBC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 전장연 지하철 투쟁, 이태원 참사 분향소 설치 반대 등등의 사건이 갖는 의미도 이 책을 읽고 나면 달리 보인다.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소외된 ˝사람˝들을 특정한 ˝장소˝에 들어오는 걸 ˝환대˝하지 않음으로서 공동체 성원으로 받아들이길 거부한다는 데 있다. 이렇게 보면 지금의 정권이 이 책의 메시지를 정확히 이해하고 정반대로만 행동하는 것 같아 소름이 끼친다.

어려운 책이지만 우리가, 그리고 사회가 왜 공동체를 기반으로 존재하는지, 그리고 민주주의는 어떻게 작동해야만 하는지를 다시금 고민하게 만드는 멋진 책이다. 오랜만에 큰 자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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