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야화 6 열린책들 세계문학 141
앙투안 갈랑 엮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구나 알고 있지만 전부 다 읽어본 사람은 별로 없는 대표적인 고전 중 하나인 <천일야화>. 페르시아 왕 샤리아는 왕비의 부정으로 인해 여성을 혐오하게 되고, 매일매일 처녀와 밤을 함께 하고 다음 날 처형시키는 만행을 거듭한다. 백성들의 슬픔과 원성이 하늘을 찌르던 어느 날, 대재상의 딸 셰에라자드는 자청하여 왕의 침전에 든다. 셰에라자드는 다음 날 새벽이 되기 전 왕에게 재미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고,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었던 왕은 셰에라자드의 처형을 매번 연기한다. 이러한 <천일야화>의 기본 틀은 다들 알고 있으리라.

<천일야화>의 매력은 물론 환상적이고 기기묘묘한 이야기 자체에서 나온다. 램프의 지니, 거대한 새 로크, 눈이 휘둥그래지는 마법과 변신, 기이한 운명의 장난… 이런 소재들이 이슬람 특유의 아우라와 결합하여 신비한 이야기들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천일야화>의 이야기 구조 역시 이 책의 매혹적인 분위기에 큰 몫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화자는 셰에라자드만이 아니다. 셰에라자드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 이야기 속의 인물들도, 또 그 속의 인물들도….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열어도 열어도 끝이 없을 것 같은 이러한 구조는 읽는 이로 하여금 이야기 속에서 길을 잃은 것 같은 어지러움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 구조는 4권에서 갑자기 모습을 감춘다(<천일야화>는 총 6권이다). 셰에라자드가 매번 절묘한 지점에서 이야기를 끊어서 샤리아 왕과 독자의 애를 타게 했던 전반부와 달리, 후반부는 끊김없이 이야기가 계속된다. 역자인 앙투안 갈랑—<천일야화>는 프랑스의 동양학자이던 앙투안 갈랑이 중동 지방의 이야기를 집대성하여 번역한 책이다—은 독자의 편의를 위해 셰에라자드의 등장을 생략했다고 밝히지만, 이때부터 이야기가 묘하게 밋밋해진다. 여전히 재미있고 놀라운 이야기들이지만, 전반부 만큼의 신비로운 매력은 덜하다.

<천일야화>가 앙투안 갈랑의 번역서라고 하나, 상당수의 이아기들은 앙투안 갈랑의 창작인 게 많다. 대표적인 게 ‘알라딘’ 이야기인데, 여기서 우리는 당시 18세기 초반 유럽에 널리 퍼진 오리엔탈리즘을 엿볼 수 있다. ‘알라딘’의 배경은 중국이지만, 등장인물이나 배경의 묘사는 영락없는 아랍이다. 그런데 원전에 실린 판화에는 변발한 중국인들이 등장한다. 판화의 중국인들은 한결같이 실눈을 뜨고 탐욕스러운 얼굴과 풍채를 하고 있다. 거기에 재미있는 점 한 가지. ‘알라딘’에 등장하는 공주의 이름은 ‘자스민’ 공주가 아니라 ‘바드룰부두르’ 공주이다. 지금의 산타클로스가 코카콜라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 이듯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알라딘’도 디즈니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오리엔탈리즘은 ‘알라딘’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게 아니다. <천일야화>의 이야기들 거의 전부가 이 혐의를 벗어날 수 없다.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오리엔탈리즘 뿐만 아니라 가부장적 윤리관과 철저한 계급 논리도 경악할 만한 수준이다. 물론 <천일야화> 집필 당시엔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지금을 사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다소간 불편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