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양장, 어나더커버 특별판)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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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전작 <당신 인생의 이야기> 이후 무려 17년 만에 출간된 테드 창의 단편집. ’현존하는 최고의 SF 작가’라는 세평에 손색없는 작품집이다. 여러 단편이 수록되어 있으나 특히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과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가 눈에 띈다.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은 이슬람 배경의 타임 리프물인데 얼핏 굉장히 이질적일 것 같지만 작품 내에서는 전혀 위화감을 느낄 수 없을 정도의 핍진성을 보여준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테넷>과 매우 유사한 모티브를 갖는 작품인데, 테드 창 본인이 밝히길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은 놀란 감독의 작품 <인터스텔라>를 감수한 물리학자 킵 손의 강연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니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과거와 현재, 미래는 분리 불가능하게 점착되어 있고 시간은 단방향으로 흐르지 않기 때문에 미래가 과거에 영향을 미친다는 아이디어는 이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을 읽으면서 자연히 <테넷>을 떠올리게 만드는 주된 요인이다.

AI의 영향력과 반려동물의 권리라는 요즘 핫한 두 가지 사회적 주제를 절묘하게 섞은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는 단편 작가인 테드 창의 작품 중 가장 긴 소설이다. 중편에 가까운 이 소설은 SF 라기 보다 멀지 않은 미래의 르포르타주처럼 읽힌다. 요즘 AI에 대한 우려는 거개가 강인공지능이 불러올 인류에 대한 위협이나 AI가 인력을 대체하는 세계의 새로운 직업 패러다임에 대한 것들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반려동물로서의 AI, 그리고 그들의 생존과 인격을 보장하고자 노력하는 인간 반려자들의 고민과 논쟁이 독자에게 무척이나 깊이 있는 울림을 준다. 꼭 10년, 20년 안에 반드시 일어날 법한 일이어서 더욱 그렇다.

이외에도 <옴팔로스>는 그의 전작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수록된 <바빌론의 탑>이나 <지옥은 신의 부재>의 계보를 잇는 “신”을 주제로 한 SF이다. 물과 기름 같은 두 장르, 신학과 SF를 절묘하게 섞어 독자에게 철학적 화두를 던지는 테드 창의 뛰어난 역량은 그가 왜 최고의 과학소설 작가로 불리는지 단박에 이해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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