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독서
김경욱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의 서사를 중시하는 이에게 단편은 마뜩치 않다. 장편은 인물들의 성격, 갈등, 상황이 켜켜이 쌓여 충분한 질감을 가진 덩어리를 이루나, 단편은 채 익지 않은 풋과일 마냥 미성숙한 세계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독자가 푹 빠질 만한 세계관을 구축하기엔 단편은 너무 짧다.
그래서 난 단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사랑하는, 단편을 잘 쓰기로 소문난 작가들(하루키라든가, 김연수라든가...)의 작품들도 읽는 내내 감탄했지만 몇 달만 지나도 기억이 가물가물해진다.
그런데 김경욱의 단편집 <위험한 독서>는 좀 다른 느낌이다. 농후한 세계관 구축이 힘들다는 단편의 한계는 어쩔 수 없지만, 그가 만들어낸 이야기의 매력이 이를 상쇄하고도 남는다. 게다가 단편답지 않게 뛰어난 디테일 - <고독을 빌려드립니다>의 홈쇼핑 전화 상담 지침이나 <맥도날드 사수 대작전>에 묘사된 알바생 업무 프로세스를 보고 있자면 작가가 진짜 이런 일을 해본 게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 은 작품의 설득력을 배가시킨다.
김경욱의 문장은 간결하고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공력이 만만치 않다. 잘 훈련된 운동선수처럼 능수능란하고 거침없다. 소설 속 인물들의 감정과 상황을 이렇게 적확한 단어와 문장으로 표현하는 작가를 참 오랜만에 만났다.
소설의 가치는 소설을 읽을 때가 아니라 소설을 읽고 난 뒤 그 내용을 곱씹어 되새길 때 비로소 그 속살을 드러낸다. 등장 인물들의 심리를, 그들의 뒷이야기를 상상하면서 소설 속을 유유히 헤엄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머릿 속은 희열로 가득해진다. 김경욱의 단편들은 제법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