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구마 겐고, 건축을 말하다
구마 겐고 지음, 이정환 옮김 / 나무생각 / 2021년 6월
평점 :
구마 겐고는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 중 한 사람이다. 20여개 국가에 다양한 건축물을 설계했는데, 우리나라의 제주 롯데 아트빌라스와 NHN 춘천데이터센터가 그의 건축물이다.
책의 목차가 특이하다. 각 장의 제목을 장소로 정하고, 네 장소에 얽힌 이야기를 한다. 저자의 고향 오쿠라야마, 유치원과 초등학교가 있었던 덴엔초후, 세계에서 온 신부들로 구성된 중.고등학교가 있던 오후나, 취락조사를 위해 간 아프리카 사하라가 그 곳이다. 건축가인 저자에게 영향을 미친 장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대학시절을 회상하며 어느 시점에서 자신이 건축가로서의 자질이 엿보였는지 하나하나 짚어나가는데 흥미롭다. 다다미바닥을 좋아하고, 이웃 친구 준코의 살아있는 자연 속 집에 대한 예찬이 이어진다. 중고교 시절 외국인 선생님들이 많았던 학교 분위기 속에서 다양성과 오픈 마인드로 건축을 대하게 되었으며, 연구하는 자신들을 침입자로 생각할 수도 있는 사하라 사막 취락조사의 기억들이 지금의 자신을 이루었다고 말한다.
자주 언급되는 20세기 대표 건축가들은 미국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프랑스 르코르뷔지에, 독일의 미스 반데어로에이다. 저자는 르코르뷔지에의 콘크리트와 미스의 철의 건축물에 대해 반감이 있어보이지만, 자연에 건축이 녹아있는 라이트에 대해서는 그리 반감이 없어 보인다. 특히 저자가 다닌 도쿄대 외벽과 도쿄 데이코쿠 호텔의 외벽은 스크래치 타일인데, 라이트가 그 딱딱한 재질로 부드러운 느낌을 만들어낸 것에 감탄한다.
저자가 싫어하는 건축 재료는 재사용할 수 없는 콘크리트라는 말에 르코르뷔지에나 안도 다다오는 좋아하지 않겠구나 생각했는데, 아닌게 아니라, 당시 동급생들은 그들의 건축을 동경했지만 저자는 그 차갑고 무거운 질감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저자가 좋아하는 것은 대나무, 바닥과 가까운 구조, 나무를 쌓는 치도리 패턴, 다다미방, 자연이 어우러진 건축물이다.
건축물을 흑백사진으로 보여주는데 건축물의 디자인과 재료의 질감을 느끼기에는 칼라풀한 사진보다 흑백사진이 오히려 집중력있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그 중에서 '티파니 긴자(2008년)'의 외관은 세련되고 멋지다. 유리판을 서로 각도가 다르게 설치해 유리의 차가운 느낌보다 부드러운 느낌이 있다. 또한, 청두 남쪽 신진의 '지, 예술관(2011년)'의 외관 역시 부드럽고 아름답다. 중국식 기와를 배치할 때 빈 공간을 두어 바람이 불면 출렁일 것 같은 망처럼 느껴진다. 중국의 낡은 농가의 기왓장이 아름다워 선택한 재료이다.
매우 건조한 에세이다. 유머는 거의 없다. 대신 저자의 건축철학을 분명하게 전달받을 수 있는 에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