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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 자오선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8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21년 6월
평점 :

코맥 매카시(1933-)는 첫 장편소설 <과수원지기>(1965)로 포크너 상을 받으며 비평계의 관심을 받았으나 대중에게는 외면당한 작가였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저술한 이 책 <핏빛 자오선(Blood Meridian)>은 매카시가 1976년 텍사스 주 엘패소로 이주한 후 발표하였는데, 서부장르 소설의 수작이자 본격적으로 문학적 명성을 안겨 주었다. 국경삼부작(모두 다 예쁜 말들 1992, 국경을 넘어 1994, 평원의 도시들 1998)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5)를 비롯하여 퓰리처상을 수상한 <로드>(2006)가 있다.
자오선(meridian)은 사전적으로 여러 의미가 있다. 천구의 북극과 남극 및 관측자의 천정(zenith)을 잇는 대원이다. 시간적으로 자시는 밤12시와 오시는 낮12시를 의미한다. 지리학적으로 자오선은 경도와 일치한다. 소설 속 자오선은 무슨 의미일까? 주인공 소년이 고향 테네시에서 시작하여 부대를 따라 서부로 이동하며 지나는 경도일 수도 있고, 태양이 작열하는 낮 12시일 수도, 학살과 같은 전투를 끝내고 모닥불에 둘러앉은 밤 12시일 수도 있겠다. 문제는 핏빛으로 물든 자오선이다. 소년의 이동에 따라 많은 인디언과 멕시코인, 백인들이 죽고 죽이며 피로 물들이는 땅을 의미하지 않을까.
책은 1846년 미국-멕시코 간 전쟁이 끝난 직후 벌어진 실제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인디언의 머리가죽을 사냥하는 부대와 멕시코 원주민, 인디언과의 대결을 그린다. 14살에 가출한 소년을 둘러싸고, 잔인하기 그지없는 대장 글랜턴, 미주알고주알 아는 게 많고 5개국어를 구사하는 악랄한 판사를 중심으로 초반부터 소년과 함께 하는 토드빈과 그나마 인간미 있는 전직신부 토빈, 인디언을 잡기 위해 이용하는 델러웨어 인디언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하나의 목적으로 움직인다. 인디언의 머리가죽을 벗겨 주지사에게 팔아 돈을 버는 것이다.
아름다운 자연을 묘사하는데 매우 문학적이다. 간혹 반페이지 이상 노을을 묘사하고 산과 사막을 묘사하는데 은유와 비유가 아름답다. 그러나 그 안에 위치한 인간들의 행태란 추악하기 그지 없다. 서로 죽이고, 머리 껍질을 벗기고, 싸우고 총질을 한다. 아름다운 풍경과는 대조적으로 폭력적인 인간의 행동이 더 강조된다.
멕시코 땅에서 백인들이 벌이는 인디언 사냥이 공식적으로 금지되면서 소설은 끝을 맺지만 살아남은 사람들도 몇 없다. 성장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소년의 심리적 갈등과 성숙이 크게 드러나지 않고, 역사소설이라고 보는 것이 더 가까울 것 같다. 지금은 미국령이 된 구 멕시코 땅을 가면 원주민들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소설에 언급되는 어도비양식은 산타페나 푸에블로에서 볼 수 있는데, 황량한 땅에 붉은 색 흙으로 지은 집을 보며 소설의 시대 배경을 그려볼 수 있다.
독특하게도 여늬 소설과는 다른 형식을 발견할 수 있다. 챕터가 시작할 때마다 여정이나 이야기의 핵심이 되는 단어를 순서대로 적는다. 목차와 같은 느낌이기도 하고, 이동 코스를 정리한 느낌이기도 하다. 대화체에 따옴표가 없다. 눈치채는 것은 줄바꿈이다. 읽다보면 익숙해지지만 처음에는 좀 의아하다.
읽기 쉬운 책은 아니지만 몰입도가 꽤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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