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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북다 / 2026년 5월
평점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옌롄커는(1958~) 중국의 소설가이다. 날카로운 현실인식과 실험적인 문체로 주목받으며 논쟁적인 작가로 평가된다.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된다. 그의 작품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가 우리나라에서 영화화되었다.
최악의 가뭄으로 '세월도 타서 재가 되어버'리는 해에 셴 할아버지는 눈먼 개 '장님'이와 옥수수 한 그루를 키운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떠났지만, 할아버지는 옥수수에 싹이 났다는 이유로 홀로 남는다. 장님이와 아침에 옥수수에 오줌을 누고 저녁에 물을 주며 애지중지 키운다. 가뭄에 먹을 것이 없어지자 뿌려 놓은 옥수수 종자를 파 먹고, 빈집털이에 나서지만 소득이 없다. 우물도 말라 요를 집어 넣어 짜서 근근히 물을 얻는다. 쥐떼와 옥수수를 두고 전쟁을 벌이고, 장님이는 쥐떼로 부터 옥수수를 지키고 할아버지는 쥐떼로 덮인 우물을 버리고 먼 곳으로 물을 길러간다. 늑대떼와 대치하지만 사력을 다해 살아오자, 장님이 역시 쥐떼와 사력을 다해 옥수수를 지켜냈음을 알게 된다.
묘사가 리얼하다. 쥐떼의 이동을 묘사하는데 '쥐 떼의 행렬이 거무튀튀한 안개처럼 몰려오고 있었다(87)'고 표현한다. 회색쥐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이동하는 장면이 눈에 그려지는 듯 공포스럽다. 또한 할아버지는 물을 구하러 가면서 배고플 때 먹으려고 삶은 쥐를 넣어 두었다가 한참 후에 펼쳐보니 물컹해진데다 쌀알 만한 알갱이가 꿈틀대는 것을 보면서 머리부터 꼭꼭 씹어 먹는데 이 장면은 얼마나 처절한지 소름이 끼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쥐는 혐오의 대상에서 점차 할아버지와 장님이에게 없어서는 안될 식량이 된다. 여전히 혐오스럽지만 그마저도 수가 줄어 굶어죽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혐오감을 누른다. 옥수수는 쥐를 유인하는 용도로만 사용한다. 쥐마저 고갈되면 할아버지가 장님이를, 아니면 장님이 할아버지를 잡아먹을 수도 있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상상이 섬짓하다.
세상에 홀로 남겨졌을 때 말동무 친구인 개 한 마리와 종자를 얻기 위한 옥수수를 키우는 마음이 어떨까? 외롭고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앞으로 돌아올 마을 사람들의 식량을 위해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옥수수를 키워내는 모습이 신성하다. 옥수수를 위해 자신의 몸을 바치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행동과 장님이의 모습이 먹먹하다. 장님이와 할아버지의 삶이 우주에 고립된 채 떠돌고 있는 우주인을 떠올리게도 하고, 무인도에 휩쓸려온 사람을 상상하게도 한다. 지구 종말이 왔을 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게 할 힘이 무엇일까 생각해보게한다.
단편이지만 묵직하다. 셴 할아버지의 집념과 장님이의 충성심이 이야기 전반에 녹아있다. 옌롄커의 작품을 접해보지 않았다면 이 작품으로 시작해봐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