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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쇼몬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단편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장하나 옮김 / 성림원북스 / 2026년 1월
평점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1892-1927)는 일본 근대 단편문학 작가이다. 1915년 <라쇼몬>으로 주목을 받았고, 1916년 <코>가 나쓰메 소세키의 칭찬을 받으며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인간 내면, 욕망, 불안,도덕적 모순을 탐구한것으로 유명하다. 35세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책에는 12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라쇼몬, 거미줄, 용, 코, 귤, 게사와 모리토, 지옥변, 덤불 속, 점귀부, 말 다리, 톱니바퀴, 어느 바보의 일생이다.
흑백 영화로 본 <라쇼몬>은 원작 <라쇼몬>과 <덤불 속>을 합쳐 만들었다. 10쪽 정도 되는 <라쇼몬>은 교토의 큰 성문으로 이제는 황폐해져 사람들이 시신을 가져다 버리는 곳이 돼버렸다. 어느 비 오는 날 주인에게 쫓겨난 하인은 이 누각 아래에서 굶어 죽을지, 도둑이 될지, 고민에 빠졌다. 그런데 누각 위에서 어떤 노인이 시체에서 머리를 뽑는 것을 잡아 가발을 만들거라는 얘기를 듣고는 그의 옷을 벗겨 달아난다. 그의 도둑질은 이제 시작이다. <덤불 속>은 칼에 찔린 남성 시체가 덤불 속에서 발견되자 나무꾼, 승려, 호멘(포승 등을 다루던 하급관리), 노파, 다조마루의 자백과 죽은 남자의 아내의 진술이 이어진다. 각자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자 결국 망자가 무녀를 통해 자신이 가슴에 칼을 꽂았고, 누군가 다가와 칼을 뽑아서 죽어버렸다고 진술한다. 과연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살인인지 자살인지 알 수 없게 이야기는 끝난다.
가장 비극적이고 무서운 단편은 <지옥변>이다. 화가 요시히데는 몰입하여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밤낮을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다. 그림을 그릴 때면 실제 모습을 보고 그려야해서, 시체를 앞에 두고 그리기도 하고, 뱀이며 시체며 부엉이며 그림에 필요하다면 구비하였다. 그에게는 어여쁜 딸이 있는데 호리카와 대신의 집에 시녀로 있다. 대신은 요시히데에게 지옥변 병풍을 요청하고, 요시히데는 마지막 장면을 그리기 위해 대신에게 수레에 불을 붙이고 아름다운 여인을 태워달라고 부탁한다. 대신은 요시히데의 딸을 불태우는데, 그렇게 병풍은 완성이 되고 대신 역시 자살한다. 화가의 집착을 단죄하려던 대신의 가혹한 처신에 몸서리가 쳐진다.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인 듯 한 작품이 <점귀부>와 <톱니바퀴>이다. "내 어머니는 광인이었다"로 시작하는 <점귀부>에는 저자의 어린시절 광인인 엄마 때문에 외숙모를 양어머니로 삼아 이야기는 저자의 생과 일치한다. 자기가 태어나기 전에 죽은 하츠코라는 첫째 누나에 대한 이야기를 회상한다. <톱니바퀴>에서는 가족도 있고, 글을 쓰며 살고 있지만, 엄마를 닮아 광인이 되어버린 화자의 이야기가 오락가락한다. 오른쪽 눈에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환각이 보이는 화자는 두통과 불면으로 고통스럽다. 화자가 만난 사람들이 실제의 사람들인지 환상인지 장면 전환이 빠르다. 더 이상 삶의 의지가 없는 마지막 말은 자살을 암시하는 듯하다.
저자의 창작은 참신하고 흥미롭지만, 자전적인 소설에서는 매우 우울하고 불안하다. 삶의 이유를 찾으려 애쓰는 저자의 모습이 간절하면서도 무력해 보인다. 창작 작품과 자신의 개인사를 드러낸 작품이 섞여 있는 독특한 단편집이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잘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