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다 하다 앤솔러지 4
김엄지 외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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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이 책은 열린책들의 '하다' 앤솔러지 중 네 번째 책이다. 5명의 작가가 '듣다'를 주제로 쓴 단편을 모았다. 김엄지의 <사송>, 김혜진의 <하루치의 말>, 백온유의 <나의 살던 고향은>, 서이제의 <폭음이 들려오면>, 최제훈의 <전래되지 않은 동화>가 수록돼 있다.

<사송>은 7년간 헤어졌다 만났다를 반복한 커플 이야기다. 사송은 카페 이름이자 언덕 이름이다. 이별을 앞둔 연인의 서늘한 대화, 의심담긴 물음에 듣고 싶은 답을 하지 않는 상대. 더 이상 캐지 않는 화자의 대화가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짤막한 문장들이 마치 시를 읽는 것처럼 드러내지 않은 의미를 감추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하루치의 말>은 반전이 매력적인 단편이다. 애실은 자신의 깊은 얘기를 들어주는 현서에게 돈을 떼인다. 구치소에 찾아가 왜 그랬냐고 다구치자 현서는 더 이상 애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지 않다며 대화를 중단한다. 애실은 돈을 떼인 것보다 자기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힘들었다는 현서의 말이 더 충격이었을 것이다. 터놓고 말을 하는 사이에 신뢰가 쌓인다고 생각했지만, 고소를 당한 처지에 신뢰는 이미 깨졌고, 상대의 얘기를 들어줄 필요는 사라진다. 기브앤테이크의 관계 밖에 되지 않음이 허탈하다.

<나의 살던 고향은> 미스터리처럼 긴장감과 궁금증이 고조되는 글이 흥미롭다. 산주의 딸과 엄마의 의문의 대화와 산주의 딸이 하는 부탁을 받아들이는 영지. 고향이 늘 마음 한 구석에 그리운 곳이 아니라, 떠나고 싶은 자들을 붙잡는 족쇄라고 설정한 것이 반전이기도 하다. 그래서 방법에 문제가 있지만 고향을 떠나려는 사람을 돕는 영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폭음이 들려오면> 귀지제거에 대한 이야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진다. 물리적 귀지제거이지만 심리적 귀지까지 제거한 조카에게 엄마의 소리가 들리고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가끔은 듣고 싶지 않은 시기를 거쳐 받아 들일 수 있는 시기가 올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들을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에게 수많은 말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싶다.

<전래되지 않은 동화>는 독특하다. 저자가 쉴 새없이 떠들어대는 말을 듣고 있는 기분이다. 화자는 자기 말을 들을 수 없는 상황인데, 친구 이야기, 왕과 마녀 이야기, 빅데이터 업무 이야기를 마구 섞어 말한다. 저자가 하는 두서없는 혼잣말을 이해하려 노력하다 보면 진이 빠지는 것이 듣기의 어려움을 실감하게 한다.

다섯 작품 모두 외로움을 품고 있다. 상대가 들어준다는 것이 나를 공감해주고 이해해주는 과정이다. <전래되지 않은 동화>처럼 들어주는 상대가 없거나, <사송>처럼 들으려하지 않거나, <하루치의 말>처럼 듣기를 거부하는 관계를 통해 홀로 남게 된다. 그러나 <나의 살던 고향은>과 <폭음이 들려오면>은 귀를 열고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행동하므로 조금은 덜 외롭지 않을까 한다. 하나의 주제에 여러 작품의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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