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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표본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다 / 2025년 10월
평점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조용하지만 서늘한 작품을 쓰는 미나토 가나에의 신간이다. 표지에 보이는 화려한 나비 표본 아래로 흘러내리는 물감도, 서늘한 제목도 자극적이다.
인간의 눈에 보이는 색과 나비의 눈에 보이는 색은 다르다. 어린 시절 나비의 눈에 보이는 세계를 구현하고자 했던 시로는 평생 나비를 연구하는 곤충학자가 된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의 나비를 표본을 만들어 영원히 간직하듯 가장 아름다운 여섯 소년들을 죽여 표본을 만든다. 그는 이 엽기적인 고백을 소설사이트에 올리고 자수한다. 그러나 이어지는 아들 이타루의 여름방학 숙제는 읽는 사람을 혼란에 빠지게 하고, 마지막에 밝혀지는 또 하나의 반전은 진정한 범인이 누구인지 밝힌다.
등장인물은 시로를 중심으로 화가인 아버지 이치로와 아들 이타루로 이어지는 부자 관계에, 화가 루미를 중심으로 어머니인 사와코와 딸 안나로 이어지는 모녀관계를 연결한다. 이치로는 '인간도 가장 아름다운 때를 표본하고 싶다'는 말로 화단에서 퇴출당하고 산 속 집에서 사와코의 초상화를 그린다. 그림을 건네주는 날, 사와코의 딸 루미는 시로가 나비의 눈으로 본 색으로 그린 그림과 나비표본을 보고 놀란다. 세월이 흘러 시로는 나비 전문 곤충학자가 되고, 루미는 화가가 되어 다시 만난다. 색채 마술사로 불리는 루미는 병색이 짙어져 후계자를 선정하기 위해 그림에 소질있는 아름다운 5명의 소년과 이타루, 딸 안나를 산속 시골집에 불러 모은다. 그러나 루미가 갑자기 발병을 한 탓에, 시로는 아이들을 각자의 집에 데려다 준다. 아이들은 개성에 따라 특정한 나비를 연상시킨다.
한 장의 사진이나 그림도 없이 인간표본과 만드는 과정을 그로테스크하게 묘사한다. 인간이지만 더 이상 인간이 아닌 나비로 변한 소년들을 처리하는 방식이 잔인하다. 신체의 일부를 자르기도 하고, 목을 잘라 반대방향으로 두기도 하고,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기기 위해 포즈를 고정한다. 배경을 그리고 사진을 찍어 남긴다. 글로만으로도 아름다움과 끔찍함이 전해진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좀더 가까웠다면 어땠을까. 시로는 어렸을 때 아버지나 엄마에게 뭔가를 요구하지 못한다. 아버지에게 액자에 넣어 방학숙제를 제출하지 않겠다는 말도 못 꺼내고, 엄마에게 작품을 넣을 상자를 달라는 말도 못한다. 그렇게 어른이 된 시로는 아들과 격이 없는 듯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아들에 대한 의심으로 비극을 초래한다. 대화를 시도했다면 어땠을까. 이 모든 것을 멈출 수 있지 않았을까. 이 부자에게 엄마의 인정을 갈구했던 안나보다 이타루의 고백이 더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는 결국 관계로 귀결된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얼마나 약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반면에 자식이 부모에게서 받는 영향은 얼마나 지대한지 드러난다. 멋진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