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전들
저스틴 토레스 지음, 송섬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저자 저스틴 토레스(1980~)는 <암전들(Blackouts)>로 2023년 전미 도서상을 수상하였고, 퀴어문학을 영미권 문학의 주요무대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는다.

책의 첫 장을 펼치면 의학 박사조지 W.헨리의 글 대부분이 검은 펜으로 지워져있는 사진을 보게된다. 일부 단어와 끊겨진 문장을 통해 유추하기에 예사롭지 않은 내용에 긴장이 고조된다. 사진 속 사람들의 얼굴 역시 마커로 지워져 있다. 도대체 책 속의 이 책은 무엇일까? 궁금증을 갖고 읽다보면 이 책이 <성적변종들: 동성애 패턴연구>(1946)임을 알게 된다.

죽음을 앞둔 후안은 자신을 찾아온 젊은 화자에게 이 책을 전해주며 잰 게이의 이야기를 완성해 달라고 부탁한다. 화자는 10년 전인 17세에 정신병원에 입원하였고 후안을 알고 지낸 것은 단 18일이었다. 10년 만에 다시 만난 후안은 나이들어 죽어가는 처지이지만, 둘은 어둠 속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화자는 10대 부부였던 백인엄마와 푸에르토리코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경찰관이 된 아버지가 동료와 게이 사이임을 알게 된다. 화자는 집을 나와 동성애자로 몸을 팔아 살아가다 정신병원에서 후안을 만나게 되고 그에게서 목걸이를 받아 간직한다. 후안은 푸에르토리코인으로 어린 시절 레즈비언 커플인 잰과 제냐의 돌봄을 받는다. 제냐는 후안을 모델로 삽화를 그렸고, 잰은 300명의 여성을 인터뷰해서 그들의 성애사를 기록한 자료를 출판하고자 한다. 출판이 불가하자 디킨슨 의사를 찾아가 출판을 부탁하지만, 후에 조지 W.헨리 박사가 두 권으로 된 <성적변종들: 동성애 패턴연구>(1946)를 펴낸다. 그 책에는 잰의 노력이 언급되지 않았고, 동성애를 병리현상으로 치료되어야 할 대상으로 치부되었다.

제목 '블랙아웃들(암전들)'을 복수명사로 책 속에서 여러 가지 암전들을 발견할 수 있다. 화자가 자살시도를 하고 깨어나 여러 번 기억이 사라지는 경험이나, <성적변종들: 동성애 패턴연구>에 검은 마커로 지워버린 문장들이나, 동성애자들을 정신병원에 가두어 치료하려고 했던 미국의 어두운 역사나, 어둠 속에 가려져버린 잰의 연구자료도 암전들이겠다. 또한 암전은 죽음을 의미하기도 하고, 후안이 죽기 전에 정신이 들어왔다 나갔다하는 것도 제목과 연결되겠다.

두 사람이 주고받는 이야기는 뚝뚝 끊겨서 시간과 장소가 자유롭게 왔다갔다한다. 이야기들의 조각조각을 읽다보면 게이인 두 사람의 인생이 보이고 레즈비언인 잰과 제냐의 인생이 보이고, 미국 역사 속에서 동성애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가 보인다. 동성애에 대한 차별뿐 아니라, 여성과 푸에르토리코인, 가난한 사람에 대한 차별들이 작품 속에 녹아있다.

정상과 비정상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비정상은 치료해서 정상으로 만들어야한다는 생각이 폭력적이다. 다양한 사람과 사랑을 인정해야하지 않을까. 구성과 서술이 독특한 책이고 동성애에 관한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면 한 번 읽어봐도 좋을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