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장소 - 유럽 속 이슬람 유산
박단,이수정 외 지음,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기획 / 틈새의시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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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이 책은 유럽 곳곳에 남아 있는 이슬람 세계의 '기억의 장소'를 따라가는 여정이다"(4)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가 기획한 유럽 속 이슬람 유산을 알아보는 책이다. 이 연구소는 유럽과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데,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권의 교류와 갈등을 연구하는 대학교수들로 이루어져있다. 


책은 4개의 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유럽 속 종교, 문화, 사상과 언어, 일상에서 이슬람의 흔적을 따라가며 21명의 전문가가 설명한다.  


노트르담 대성당을 비롯해 카톨릭 성당들이 많은 프랑스에서 파리 한복판에 위치한 '파리 대모스크'는 독특하다. 프랑스는 알제리, 모로코를 비롯한 북아프리카의 이슬람국가를 식민지화한 이후부터 이슬람과 인연을 갖게 되었다. 이 파리 대모스크는 1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를 위해 헌신한 무슬림 식민지 병사를 기리기 위해 1926년 건립되었다. 2차 대전 중에는 유대인의 피신처 역할을 하기도 하고, 오늘날에는 이슬람 테러 단체에 납치된 프랑스인 구출공간으로 이용되었다. 프랑스 이슬람 공동체는 이라크의 이슬람 무장단체가 프랑스 기자를 납치하고 '프랑스 공립학교에서 히잡을 금지하는 법(2004)'을 제정하지 말라고 요청하자, 파리 대모스크 이맘인 달릴 부바쾨르가 이는 프랑스의 문제이고, 프랑스는 이슬람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다고 설득해서 인질을 석방한다. 파리 한복판에 있는 이슬람 성전의 역사적 변천과 오늘날 두렵기만 한 존재인 이슬람 무장단체를 상대로 평화적 해결을 이루어낸 프랑스 내 이슬람 공동체의 힘을 알 수 있다.   


유럽 속에는 모스크나 알함브라 궁전과 같이 눈에 보이는 이슬람 양식도 있고, 과학, 수학, 천문학의 영향이나 독일어와 스페인어 속 아랍어 차용처럼 무형의 흔적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림속에서 이슬람의영향을 찾아내는 작업이다.


화가의 그림 속에서 이슬람의 흔적은 '홀바인 카펫'이다. 이 카펫은 화가 한스 홀바인(1497-1543)이 작품에 반복적으로 그렸던 붉은 바탕에 다양한 문양이 직조된 카펫을 말한다. 한스 홀바인은 독일 태생의 영국 헨리 8세의 궁정화가로, 사실주의 초상화로 유명하다. <대사들>(1533)에서 탁상 위의 카펫이나 권력과 부를 과시한 <헨리 8세의 초상화>(1540)에서 발아래 깔린 카펫을 찾을 수 있다. 미술사가들은 이 카펫이 15-16세기 오스만 제국의 도시인 우샥에서 직조된 특정 유형의 카펫임을 밝혀낸다. 최고의 카펫은 이란과 튀르키예산으로 고가의 사치품이었다. 카펫은 바닥에 깔거나 벽이나 발코니를 장식하거나 덮개로 사용했고, 회화에서 중요 인물 가까이에 카펫을 두었다. 카펫은 부와 권위의 상징으로, 왕이나 고위 성직자만 소유할수 있었으나, 무역이 발달하며 점차 중산층까지 범위가 확장되었다. 이념이나 종교와 상관없이 일상에서 난방이나 인테리어용으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 


여러 명의 대학의 교수들이 전공을 살려 쓴 자료를 모은 것이라 내용이 충실하고 자세하다. 참고문헌이 풍부한데, 책과 최근의 연구논문이나 인터넷 자료도 비교적 최신이다. 조금 딱딱한 소논문과 같은 형식의 글도 있고, 에세이 같은 글도 있다. 상당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어서 가볍게 읽기 보다 유럽과 이슬람의 교류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유럽 역사에서 정복이나 무역을 통해 유럽과 중동이 교류하면서 만들어낸 문화를 들여다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 읽고 나면 카톨릭교가 대부분인 유럽 여러 나라에서 왜 이슬람의 흔적이 발견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아라비아 반도에서 시작된 이슬람의 역사와 문화의 개괄적인 소개가 책 초반에 있었다면 좋았겠다. 그랬다면, 여러 교수의 연구들이 어느 맥락에서 이야기되고 있는지 파악하기 쉬웠을 것 같다. 오스만제국의 침입과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한 무역의 발달, 780여년 간 지속된 이베리아반도의 이슬람 축출활동인 레콩키스타와 십자군 전쟁, 프랑스와 영국의 아프리카 식민지 정책에 이르는 근현대까지의 이슬람 역사의 기본적인 설명이 필요해보인다. 


카톨릭이 대세인 유럽 속에서 유니크한 이슬람 문화를 발견하고 싶다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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