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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 개정판
양귀자 지음 / 쓰다 / 2013년 4월
평점 :
1998년 작품인 <모순>은 지금도 인기이다. 무슨 매력이 있어 20년도 넘은 소설이 아직도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25세의 '나'는 이모부가 소개시켜준 직장에 다니고 있다. 내게는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고 있는 아버지와 억척스럽게 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엄마, 문제아에서 조직의 보스가 되고 싶어하는 건달 남동생이 있다. 엄마는 이모와 일란성 쌍둥이인데 사는 모습은 전혀 닮지 않았다. 이모는 부유한 집에서 우아하게 살고 있지만, 엄마는 나의 여러 번의 가출과 그에 못지 않은 남동생의 다사다난한 사건사고를 수습하며 남편없이 고군분투 중이다.
이야기 속에 모순의 요소가 다양하고 집요하게 들어있다. 행복과 불행, 풍요와 빈곤, 몽상과 현실, 자유와 억압, 원칙주의자와 폭주자, 삶과 죽음이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와 이야기에 녹아있다. 특히, '나'가 결혼까지 생각하는 두 남자 김장우와 나영규는 매우 대조적인 성격인데 둘을 모두 사랑한다는 '나'의 고백이 모순이다. 가난한 사진가인 김장우의 여유와 낭만적인 연애 앞에서 나는 이상하게 솔직한 내 모습과 집안 사정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연기를 하듯 그렇게 내가 아닌 모습으로 예쁘게 그와 만난다. 반면에 직장도 괜찮고 데이트를 위해서 무엇을 할지 일일이 계획하고 그대로 움직여야하는 나영규 앞에서는 아버지가 집을 나간 사실부터 남동생이 감옥에 가게된 이야기까지 알려주며 솔직한 내 모습으로 만난다. 누구를 선택하는지 과정이 흥미롭다.
저자가 작가노트에서 밝혔듯이 정말 꼼꼼하게 쓴 소설이다. 각 장이 하나의 단편으로 읽어도 좋을 만큼 정성스럽다. 문체가 그렇고 묘사가 그렇다. 그래서 좀 술술 읽히지 않는다. 우연히 넘어가는 일이 없이 다 인과가 있고, 모순적인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여 같은 주제 아래 묶여 있다. 좀더 자유로웠으면 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읽으며 계속 선택을 요하는 질문에 작가의 생강이 궁금해 읽기를 중단하기 어렵다. 남편과 자식들의 사건사고를 수습하느라 정신없는 엄마의 삶이 나을까, 경제적으로 풍요롭지만 심심한 남편과 유학가서 돌아오지 않는 자식들을 그리워하는 이모의 삶이 좋을까? 결혼상대로 나를 그대로 표현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 좋을까, 내 부끄러운 점은 모두 감추고 아름답고 좋은 점만 보여주고 싶은 상대가 좋을까? 이 편에 섰다가 저편으로 다시 넘어가며 읽는 재미에 어느새 결말이다.
선택의 기로에서 '나라면 이렇게 할 텐데...'라는 생각이 자꾸 끼어들며 아웅다웅 읽는 재미가 있다. 등장인물의 선택에 대해 안타깝기도 하고 어쩔 수 없었을 것임이 이해된다. 구성이 치밀해서 뒤를 읽지 않고서는 책을 놓을 수 없다.
선택의 기로에서 어떻게 결정을 내릴지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다면 강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