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과학자의 인문학 필사 노트 - 인문학을 시작하는 모든 이를 위한 80 작품 속 최고의 문장들
이명현 지음 / 땡스B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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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혹 우연히 펼친 책에서 낯설게 느껴졌던 문장에 은근히 공감이 갔던 적이 있는가. 이 책은 그런 문장들을 엮었고, 아마 또 다른 경험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서문, 7)."

저자는 천문학자이고, 책방을 운영하면서 '과학커뮤니케이터'로 과학을 쉽게 설명하는 일을 한다. 이 책은 80권의 인문서, 과학서, 문학서, 에세이에서 뽑은 인용문을 모았다. 왼쪽에 인용문, 오른쪽에 필사할 공간, 다음 페이지에 저자의 감상평이 있다.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반전이 인상적인 책이다. 저자가 롤모델로 삼으려했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자세히 캐고 보니 우생학자에, 사서에게 성소수자임을 밝히겠다고 한 협박자이자, 스탠퍼드대 총장을 유지하기 위해 제인 스탠퍼드를 독살한 것으로 추정되는 자로 밝혀진다. 룰루 밀러의 이 작품 발표 후 대학 내 스타 조던의 스승 동상이 제거되고, 스타 조던의 이름을 딴 건물의 이름이 바뀐다. 한 사람의 저술로 진실이 드러나고 바로 잡아지는 힘이 놀랍다.

이정모의 <찬란한 멸종>은 서로 모순되는 제목이라는 생각인데, 인용문을 읽고 보니 잘 지은 제목이다. 교감이 교장이 되려면 현직 교장이 그만두어야하듯, 새로운 생명이 등장하려면 기존의 생명이 멸종해야한다는 비유가 단박에 이해된다. 후대를 위한 멸종은 찬란한 것이겠다. 지구는 다섯 번의 대멸종마다 대다수의 생명체가 멸종했고, 살아남은 생명체는 진화하며 번성했다. 지구에 사는 생명체의 구성이 바뀌는 것이다. 또 있을 대멸종에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책 한 번 읽어보고 싶다.

읽으면서 우리말 번역이 좋았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번역한 홍승수(1944-2019)님의 글이 반갑다. 천문학자이자 대학교수인 홍승수님은 이 책의 번역이 끝난 후 칼 세이건의 열정에 감동했다고 고백한다. <코스모스>는 대단한 명문으로 되어 있는데 그 분위기를 살리기가 어려웠고, 긴 문장에 애를 먹었다고 한다. 번역본 <코스모스>를 읽어보면 번역자의 이런 고민을 전혀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유려하다. 일반인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는 책인데도 쉽게 읽혀서 상당히 오랫동안 스테디 셀러로 있다. 사실 번역자 홍승수 교수는 칼 세이건이 대중을 상대로 강연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했는데 번역 후 칼 세이건처럼 일반인을 위한 강연과 글을 쓰며 살았다고 보충 설명한다. 자세히 보면 선입견이 깨지고,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는다고 평한다.

이 책은 인용문만 모아 두어서 뜬금없지 않을까했는데, 앞뒤 맥락없이 인용문만으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저자의 감상평은 인용문에 대한 보충 설명과 생각의 확장을 유도해서 좋다. 해설서 같기도 하고, 또 다른 관점에서 질문을 던지기도 해서 생각보다 깊이있게 읽을 수 있다. 추후에 책을 읽으며 인용할 문단을 적어두는 것도 읽은 책을 오래 기억할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다.

저자가 선택한 책에는 <장자>, <이기적 유전자>, <안나 카레니나1>와 같은 고전도 있지만, <삼체>나 <밤이 선생이다>,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처럼 생각보다 최근에 발표된 작품들도 많아서 고리타분하지 않아 좋다.

어떤 책을 읽어야할지 고민이라면, 정선된 인용문과 저자의 생각을 곁들인 이 책에서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추려나가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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