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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올해의 문제소설 - 현대문학 교수 350명이 뽑은
한국현대소설학회 엮음 / 푸른사상 / 2025년 2월
평점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현대문학 교수들이 뽑은 2024년 한국 단편소설 11편을 소개한다. 2024년 발표된 작품들의 특징이라면 페미니즘/퀴어 문학이 이어졌고, SF나 장르 문학은 다소 줄어들었다고 평한다.
11개의 단편은 각기 다른 소재와 주제가 장편 못지 않게 무겁고 진지하다. 동성애자와 트렌스젠더 이야기를 다룬 '만나고 나서 하는 생각'과 '리틀 프라이드', 고단한 삶을 사는 젊은이들의 이야기인 '여름이 없는 나라', 태극기부대 속으로 들어간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 미국 교포 이야기 '스무드', 등장인물들의 정체와 글의 마무리가 애매한 '작은 벌', 부부간의 주동자와 추종자에 관한 설명이 독특한 '옮겨붙은 소망', 엄마와 딸은 어떤 관계일까 고민하게 한 'AKA신숙자', 맨발의 여자가 도움을 요청하는 상황을 생각해보게한 '괄호밖은 안녕', 자매가 정신상담을 받는 '청의 자리', 아이돌의 정자를 공여받은 '최애의 아이', 버리지 않고 키워주지만 버려진 아이들처럼 자란 자매의 '과자 집을 지나쳐'와 같은 작품들은 현재 우리사회의 문제를 깊이있고 날카롭게 다룬다.
가장 쇼킹한 이야기는 <최애의 아이>다. 30대인 '우미'는 잘생긴 20대 초반의 아이돌 '유리'의 정자를 받아 아이를 낳으려한다. 아이가 13세가 되면, 기획사에 사진을 찍어 보내고 그 애가 창출할 경제적 이득과 소유권의 10%를 주는 것에 싸인한다. 우미는 임신한 몸으로 아이돌 유리를 만나기 위해 "미남 공포증은 여전했지만 어쨌든 아이에게 아빠 얼굴 한 번은 보여줄 필요도 있었다(301)"며 팬미팅에서 직접 대면하고 배에 손을 얹어 보게한다. 그러나 뉴스에서 정자의 주인이 아이돌이 아닌 것으로 발표되는데... 남자 아이돌의 정자를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것이 상상 초월이다. 공상과학 같지만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팬으로서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정자라면 댓가를 지불하고 임신하려는 여성이 있을까? 과감한 소재와 상상력이 상식을 넘는다.
엄마와 딸의 관계를 불편하게 그려낸 'AKA 신숙자'도 인상적이다. 엄마를 숙자씨라 부르는 딸 박미리는 프리랜서 작가이고, 동거했던 남자친구과 헤어진 상태이다. 엄마는 딸 아이가 다시 집으로 돌아올까 걱정이고, 딸은 엄마가 치매증상이 있는지 자꾸 확인한다. 엄마는 옆집보다 난방비 4천원이 더 나왔다며 아끼고 살지만, 일을 해서 돈을 벌 생각은 없다. 쉬어도 될 만큼 늙었다고 생각하는 엄마와 부양자이기를 거부하는 딸 사이는 좁혀지지 않는다. 통장에 700만원 밖에 없는 딸은 생판 모르는 길고양이를 데려다 놓고 병 치료에 그 반을 쓰지만, 엄마를 위해 얼마를 쓸 수 있냐는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는다. 딸은 내리 사랑이라한다. 서로의 생각은 끝까지 좁혀지지 않다가 결국 엄마가 양말포장하는 일을 하기로한다. 모녀가 모두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상태에서 일상이 갈등이다. 엄마의 입장에서 줏어온 고양이만도 못한 대접을 받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겠다. 그러나 요즘 자식에게 키워줬으니 노년을 책임져달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부모세대가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수록된 작가들의 단편작품들은 현재 우리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불편할 수도 있는 주제나, 사회약자의 이야기를 한없이 어둡게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때로 명랑한 톤으로, 때로 있는 대로, 때로 그 안을 들여다보고 비판하기도 한다. 현실의 사건이나 현상을 가져오지만 이태원 압사 사건이나 젊은 파이어족의 일상 같은 직접적인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충분히 유추하고 상상하게 한다.
내년도 기대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