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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속의 여인 ㅣ 캐드펠 수사 시리즈 6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평점 :
엘리스 피터스(1913-1995)는 영국의 추리소설 작가로 움베르토 에코가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한 작가다. 중세를 바탕으로 한 캐드펠(Cadfael) 수사 시리즈로 유명하다. 화학실 조교와 약 조제사, 제2차세계대전에 해군으로 참전하는 등 그녀의 경험과 지식이 소설에 남아있다. 애거사 크리스티(1890-1976) 역시 1차대전에 간호사로 근무하며 다양한 약제들을 접했던 경험이 소설에 녹아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엘리스 피터스의 작품이 어떠할지 기대된다.
1139년 11월 잉글랜드는 약탈자들이 마을을 급습하고 피해를 입은 농민들의 생활은 처참하다. 귀족 가문의 남매인 18세의 누나 에르미나와 13세의 남동생 이브는 가정교사 수녀와 함께 슈루즈베리의 수도원을 향해 가던 중 사라진다. 60세에 가까운 캐드펠 수사는 이 아이들을 찾던 중 얼음 속에 피살당한 채 누워있는 여인을 발견하고는 여인의 정체와 살인자를 추적한다. 반전과 따뜻한 결말은 미소가 절로 나게 한다.
캐드펠 시리즈를 처음 읽는다면, 이야기 초반의 배경설명을 눈여겨 읽고 책 뒤에 있는 주석을 미리 읽어서 작품의 배경을 이해하면 좋다. 당시 잉글랜드는 스티븐 왕이 정권을 잡고 경쟁자인 모드 황후를 서쪽으로 몰아낸 상황이다. 어수선한 정국에 십자군 전쟁에서 돌아온 남매의 외숙은 황후쪽 귀족이라 스티븐 왕의 지역으로 사라진 아이들을 찾기 위해 섣불리 들어가지 못한다는 설정이다.
소설 전반에 중세의 느낌이 물씬난다. 수도원에서 기침약을 만든다든가, 십자군 전쟁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라든가, 아이이지만 귀족의 당당함을 잃지 않는 태도라든가, 잉글랜드의 왕권 다툼으로 피난민과 약탈자들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상상하면 현대물과는 다른 속도감과 느낌이 있다.
사건은 사람이나 말이 뛰는 속도 정도로 진행된다. 특히 캐드펠이 젊은 시절 십자군 원정을 다녀왔고 이제는 수도원에서 약제를 다루는 60을 바라보는 수사이므로, 행동력을 대신할 휴 베링어 행정장관 보좌관의 도움이 필요하다. 캐드펠이 어떤 추리를 했는지는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그리 눈에 띄지 않다가 갑자기 '어, 이상한데?'는 느낌이 들 때쯤 캐드펠이 던지는 한 마디가 뭔가 잘못되었음을 알려주는 실마리가 된다. 캐드펠 수사는 혼자서 일을 다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주위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도 독특하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한 켠에 흐른다. 돈을 노리는 사랑과 자신을 목숨을 바쳐 지켜주는 사랑을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말보다 행동할 때 상대의 진심을 알 수 있는 것이라는 진실이 소설에서 그대로 표현된다. 또한 젊은 카톨릭 사제가 여인에게 품는 사랑에 죄책감을 느끼고 괴로워하는 마음이 안타깝다.
셰익스피어 연극에나 나올 것 같은 대사가 상당히 클래식하다. 기억을 잃은 엘리어스 수사가 수녀의 소식을 듣자 기억이 돌아오는 듯 한탄한다. "아아, 이 집의 돌이여, 내 위로 무너져 나를 덮어다오! 이럴 수는 없어! 사람들이 나를 보지 못하도록 제발 나를 묻어다오!(154)"라고 외치는데 연극배우의 대사같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캐드펠 수사의 추리와 매력이 가득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