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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도 없는 사이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백수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5월
평점 :
이 책은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는 말로 유명한 시몬 드 보부아르(1908-1986)의 자전 소설이다. 1954년에 이 작품을 썼으나 사후인 2020년에 발표되었다. "보부아르는 죽을 때까지 이 소설을 버리지 않았다"는 표지의 문구로 보아 보부아르가 누구와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싶어했을까 궁금하다.
화상을 입어 1년 만에 학교로 돌아온 앙드레는 반에서 가장 공부 를 잘하는 나(실비)에게 공책을 빌려달라며 친구가 된다. 앙드레는 7남매로 아이들이 넘치는 집안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생각하고 생활한다. 공부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뛰어난 앙드레는 어느새 내게 그 아이가 없으면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은 상태가 된다. 십대를 지나며 자유롭게만 보였던 앙드레는 종교적으로 엄격한 집안에서 규율을 지키며 산다. 앙드레는 엄마의 반대로 남자친구를 만날 수 없고, 앙드레의 언니가 원치 않는 사람과 결혼해야하는 것을 지켜본다. 반면 더 이상 신을 믿지 않는 나는 대학에서 파스칼을 만나 앙드레와 함께 셋이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앙드레와 파스칼이 사랑하는 사이가 되는 것에 질투하지 않는다. 안타깝게 이들의 사랑은 이어지지 못한다.
실제로 시몬은 9살 때 만난 엘리자베스 라쿠앵(자자)을 앙드레라는 친구로 그렸다. 어린 시절 시몬보다 더 자유롭고 조숙한 생각을 하는 자자는 나이가 들며 오히려 종교적이고 보수적인 집안의 규율에 순종적이 된다. 반면 기운 집안 사정으로 대학 졸업 후 직업을 구해야하는 시몬은 근대적 여성의 삶이 가능하다. '여자는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렇게 극명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지금은 당연하지만 20세기 초반까지도 당연하지 못했던 사회상이 안타깝다.
소설 속에서 '여자아이는 결혼을 하거나 수녀원에 가는 것일 뿐'이라고 말하는 앙드레 엄마의 말은 당시의 딸들이 계층에 맞는 남자와 사교계 파티에서 만나 혼인을 하는 것이 유일한 미래라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1929년)의 사회상과 겹쳐진다. 1929년 버지니아 울프가 느끼는 영국의 시대상황은 프랑스의 시몬 드 보부아르가 느끼는 상황과 닮아있다. 여자는 남자 재산의 일부이고, 평생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이 아내가 되는것이라는 사실, 카톨릭이라는 완고한 종교적 이념과 생활방식을 벗어나기 어렵고, 유대인이나 신을 믿지 않는 사람과는 가까이 하지 않으려는 앙드레 엄마의 완고함이 당시 시대를 대변한다. 다행히도 버지니아와 시몬은 대학교육을 받고 움트기 시작한 여성교육의 혜택을 받아 다르게 살 수 있었다.
엄마의 요구에 거절하지 못하지만 가고 싶지 않은 곳을 가라고 종용받을 때면 도끼로 자기 발을 찍는 앙드레의 잔인함이 살짝 두렵다. 이 정도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앙드레가 부모의 말을 거역하지 못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스트레스임을 보여준다. 빨간 장미처럼 정열을 가슴에 품은 앙드레가 자유를 얻을 곳은 현실에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시몬이 흠모한 어린 시절 친구 자자와의 이야기를 쓴 이 책을 출판하려할 때 샤르트르가 공개하기에 너무 개인적인 것이라고 조언해서 출판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나올 작품은 나온다. 정신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가까웠던 자자에 대한 기억이 시몬이 이 작품을 왜 죽을 때까지 갖고 있었는지 다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