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미술관 - 우리가 이제껏 만나보지 못했던 '읽는 그림'에 대하여
이창용 지음 / 웨일북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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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10년간 파리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 도슨트로 활약하고 있다.

서문이 간결하면서 핵심을 잘 설명하고 있어서 호감이 간다. 서양미술을 인상파를 중심으로 그 이전의 고전주의와 이후의 현대미술로 나눈다. 고전주의는 읽는 그림으로 숨겨진 의미를 해석하며 봐야하는 반면, 현대미술은 보이는 대로 감상하면 된다. 고전주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저자는 화가가 살았던 시대와 사회 상황, 화가의 개인 상황을 소개하면서 그림을 설명한다.

책은 영감, 고독, 사랑, 영원을 주제로 4개의 방으로 나누어져 있다. 고흐, 뭉크, 피카소, 고야, 이중섭, 카라바조, 미켈란젤로, 클림트, 샤갈, 밀레, 홀바인과 같이 유명한 화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설명할 뿐 아니라, 여성 화가 베르트 모리조와 작자미상의 조각인 <라오콘 군상>은 꽤 인상적이다.

강렬한 원색을 쓴 앙리 마티스가 피카소의 라이벌이었다는 사실은 처음 알게 되었다. 강렬한 원색을 과감하게 쓰는 마티스의 작품은 길들여지지 않은 야수와 같다고 해서 '야수파'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은 스승 마티스의 <삶의 기쁨>을 뛰어넘겠다는 일념으로 그린 것이라는데 두 그림 모두 강렬하다. 둘의 관계가 궁금해서 검색을 해보니, 스승과 제자 사이었던 둘은 서로 앙숙이 되지만 마티스가 죽을 때 피카소를 인정하는 찬사를 남기고, 피카소 역시 자신의 유일한 스승이었음을 고백했다니 둘은 서로 영감을 주고 받는 훌륭한 라이벌이었다.

뭉크의 <절규>는 귀를 막은 사람이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니라, 어디선가 들려오는 절규에 놀라 귀를 막는 장면이라는 반전이 있다. 공황장애를 앓고 있던 뭉크의 심리상태를 나타내서 더 기묘해 보인다. 뭉크는 노르웨이 국민 화가이자 표현주의 창시자이다. 사랑에 실패하고 외로운 상태였는데, 정신병원에서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는 여동생을 면회하고 내려오는 길에 경험한 절규를 자기 식으로 해석해 그렸다고 하니 그림 속의 인물이 더욱 안타깝다. 괜찮다고 달래주고 싶어진다.

조각 작품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와 <라오콘 군상>이 소개된다. <피에타>를 위에서 내려다 보는 사진은 처음이다. 죽은 예수의 전신을 더 자세히 볼 수 있고, 마리아의 한 손이 하늘을 향해 있는데, 이는 아들을 하느님에게 보내드린다는 의미이다. 미켈란젤로가 24세에 조각한 것인데, 당대 사람들도 젊은이의 말을 믿으려하지 않자, 마리아 옷섶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넣는다. 또하나의 굉장한 작품인 <라오콘 군상>은 뱀에 휘감겨 괴로워하는 라오콘과 아들의 고통과 뒤틀리는 역동성에 감탄이 나온다. 작자미상이고 BC175-150년에 제작되었다고 하는데, 인간의 능력은 현대라고 더 우수한 것은 아닌 듯하다. 당시 이 조각상의 오른팔을 복원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미켈란젤로는 거절한다. 후대 복원가들이 쭉 뻗은 형태로 복원했지만, 원형을 발견하고는 미켈란젤로가 주장한대로 굽어 있었다는 점이 놀랍다.

작품만큼이나 다양한 인생을 살다간 예술가들이다. 피카소나 클림트처럼 생애에 그림을 팔아 큰 부자로 산 화가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화가는 가난하게 살다가 사후에 유명해진다. 너무 가난해서 할머니와 엄마의 임종을 보러갈 돈도 없었던 밀레의 <기다림>은 가슴 아프고, 가난에서 벗어나자 기고만장하며 범죄를 저지르며 도망다닌 카라바조의 인생도 허무하다. 그의 작품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에는 자신의 두 얼굴을 담는다. 예술가로 화려한 삶을 살았던 자신을 다윗으로, 추악한 범죄자가 되어버린 자신을 골리앗으로 표현하며 반성하지만, 다시 기회는 주어지지 않고, 39살에 허망하게 죽는다.

이 책은 옆에서 설명하듯 쓴 글이라 딱딱하지 않고 부드럽게 읽힌다. 고전작품은 설명을 듣고 나서 보는 것이 그냥 보는 것과 현격히 차이가 있다. 알고 봐야 스토리가 있고 감정이 생긴다. 산발적으로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 잘 정리되는 느낌이다. 그림 뒤에 담겨있는 화가의 생애와 작품이 만들어질 때의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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