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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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 작가의 단편소설집이다. 7편이 수록되어있는데, 제목은 봄밤, 삼인행, 이모, 카메라, 역광, 실내화 한켤레, 층이다.

<봄밤>의 이 커플은 어쩌면 이렇게 기구하고 애처로운지 안타깝다.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시작해 시한부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는 남편과 알콜중독으로 술을 마시지 않고서는 도저히 버틸수 없는 아내. 초혼의 상처로 무너진 두 사람은 재혼으로 서로를 아껴주고 사랑하지만 함께 할 시간은 애틋하게도 길지 못하다. 만만치 않은 <이모>의 주인공 이모의 삶과, <카메라>의 관주와 문정 커플 역시 비극적이고 슬프다.

<삼인행>은 이혼을 앞둔 부부와 그들의 친구가 함께 떠나는 여행 이야기인데, 왜 이 부부가 이혼하려는지 마지막에 가서야 알게 된다. <역광>은 가장 몽환적이다. 커피에 술을 타서 마실 정도로 알콜중독인 한 신인 작가가 예술인숙소에 입소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상상과 현실의 혼재로 몰입되는 작품이다. <실내화 한켤레>는 세 여고 동창생의 이야기이다. 가슴 깊이 새겨둔 열등감과 질투가 악의로 변하는데 섬짓하다. <층>은 서로 다른 계층의 남녀가 오해로 인해 이루어지지 않는 이야기다.

일상의 어느 한 장면을 뚝 잘라 이야기를 이어가는 저자의 단편은 짧은 만큼 깊은 인상과 여운을 남긴다. 각 이야기의 내용은 행복하고 아늑한 상황 보다 아프고 어두운 상황이 벌어지고, 이해할 수 없는 인간 행동의 이유가 서서히 드러난다. 추리소설을 읽듯이 긴장을 놓을 수 없다. 해피엔딩이 아닌 비극이어도 슬프기만 한 것이 아니다. 결혼 생활의 전반이 불행했어도 후반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열심히 사랑하며 산 <봄밤>의 커플과, 가족을 위해 번 돈을 모두 내주었지만 여전히 바라기만 하는 가족과 과감히 연을 끊고 혼자 자유롭게 살아보다 죽어가는 <이모>의 이모처럼 주어진 상황을 극복하려한 주인공들의 삶이 우울하지만은 않다.

단편의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아무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독자는 조심스레 전후를 추측하며 이야기에 자기의 생각을 꿰맞추어 가며 읽는다. 짧은 이야기의 전개 속에서도 인간관계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질투, 사랑과 오해가 넘치고, 어떤 것은 시원하게 갈등이 해소되기도 하고 어떤 것은 찜찜한 상태로 끝나기도 한다. 인생이 그런 것이므로. 이야기의 끝 역시 뚝 잘라 끝나버려 진한 여운을 주기도 하고, 처음으로 돌아가 읽은 이야기를 다시 곱씹어 보게도 한다.

각 단편 모두 강렬하다. 권여선 작가의 팬이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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