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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지와 왕국 ㅣ 알베르 카뮈 전집 개정판 4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2023년 11월
평점 :
알베르 카뮈의 단편은 처음이다.
책은 6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있다. 간부, 배교자 혹은 혼미해진 정신, 말 없는 사람들, 손님, 요나 혹은 작업 중인 예술가, 자라나는 돌이다. 카뮈의 작품만큼 중요한 것은 이 6편의 단편을 설명하는 번역가 김화영의 해설편이다. 번역가 김화영은 프랑스 엑상프로방스대학교에서 알베르 카뮈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해설편에서 소설이 쓰여진 시대배경과 카뮈의 경험과 사상을 작품과 연결하여 설명한다. 6개의 단편을 다 읽고도 카뮈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모호하다면 해설편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제목에서 '적지'라는 말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아 사전을 찾아보니 '적'이 귀양갈 적이다. 이로써 제목 l'exil et le royaume는 귀양지와 왕국이란 뜻이다. 적지와 왕국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서문에서 '왕국'은 우리가 새로 태어나기 위해 반드시 되찾아야할 자유롭고 벌거벗은 삶이고, 적지는 그 삶으로 나아가는 길을 의미한다. 해설을 참고하면, 카뮈에게 적지는 파리이고, 왕국은 그의 고향 알제리다.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에서 태어난 카뮈에게 사막과 오아시스가 있는 알제리가 마음이 편해지는 왕국이고, 파리는 귀양보내진 곳처럼 불편한 곳이다. 파리는 부르주아들이 사는 경직된 사회이고, 알제리는 유목민의 자유가 있는 곳이다. 이 제목은 6개의 단편을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6개의 작품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간부>는 간통한 여자라는 의미다. 사업하는 남편을 따라 사막의 오아시스 마을까지 따라온 아내의 이야기다. 그녀가 왜 밤에 돌아다니는지 누구와 간통했는지를 표현하고 있지 않아 모호하다. <배교자 혹은 혼미해진 정신>은 기독교가 만연한 지역에서 천주교 신부가 된 자가 야만인을 선교하러 가지만 결국 야만인의 종교를 믿게 된다. <말 없는 사람들>은 술통을 만드는 노동자인 이바르를 비롯한 동료들이 파업에 실패한 이후 사장과 말이 없어진 상황을 그린다. <손님>은 고원지대 교사 다뤼가 죄수를 넘겨받고 그에게 감옥으로 갈지 도망칠지 선택권을 준다. <요나 혹은 작업 중인 예술가>는 유명해진 화가의 부조리한 상황을 그린다. <자라나는 돌>은 남미의 댐건설에 파견된 기사 다라스트가 원주민에게 받아들여지는 이야기다.
카뮈는 어떻게, 왜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품고 글을 쓰는 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3단계로 나눌 수 있는데 1단계가 '부조리'이고, 2단계가 '반항'이고, 3단계가 '사랑'이다. 이 작품은 2에서 3단계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것이다. 부조리가 '나'의 고독으로부터 부조리한 운명에 맞서는 것으로 절망하거나 종교적으로 초월하거나 예술적으로 반항한다. 반항의 단계는 '우리'의 유대의식으로 발전된다. 6개의 작품 중 가장 '우리'의 유대의식에 가까운 것은 마지막 <자라나는 돌>의 주인공 다라스트이다. 브라질 열대림에서 소수 백인 유지들에 속하기 보다 댐을 지어주고 길을 내주는 일을 하는 다라스트에게는 그 곳 원주민을 위해 필요한 사람이다. 다라스트가 원주민들에게 받아들여지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
가장 어려운 것이 <간부>였다. 여자는 마르셀의 아내 자닌밖에 없으므로 그녀가 간부일텐데 어느 곳에도 간통하는 장면이 없다. 도시에서 자란 자닌에게 남편과 함께 도착한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는 적지와 같다. 잠을 이루지 못해 한밤에 외출하면서 그녀는 '밤'과 간통을 하고 적지는 마침내 왕국과 같아진다는 해석이다. 적지 속에서 왕국을 발견해가는 과정을 그린 단편인 것이다.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었던 작품은 <요나 혹은 작업 중인 예술가>다. 카뮈가 요나를 내세워 작가로서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있다. 요나의 상황은 부조리한데, 화가로서 유명해지자 더욱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가족, 친구, 팬들에게 자신의 시간을 할애하면서 이리저리 휘둘린다. 결국 그림 그릴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 채 방황하다가 다락과 같은 공간을 만들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지만 아무것도 그리지 못하고 쓰러진다. '고독'이냐 '연대'냐는 부조리한 상황을 감당하기 힘들다.
카뮈의 부조리를 조금은 이해하겠다. 서로 상반되는 상황에 처해있으면서 이를 극복하는 것이 카뮈의 부조리다. 적지에 있으면서 왕국을 지향하는 것과 같다. 요나처럼 고독해야하는데 연대하고 있는 상황도 그렇다. 카뮈의 생각을 알지 못하고는 이 소설을 제대로 읽을 수 없다. 읽고는 있지만 은유와 비유가 있으리라는 느낌만 있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난감하다. 번역자의 해석이 중요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