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근교를 산책합니다 - 일상인의 시선을 따라가는 작은 여행, 특별한 발견
이예은 지음 / 세나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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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행을 마음의 스트레칭이라고 부릅니다. ...평소 생활 반경에서 벗어나 낯선 풍경과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배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4)."

도쿄도 서울처럼 빌딩숲의 번잡한 도심을 벗어나면 벌판과 드물게 있는 마을 풍경이 펼쳐진다. 주중에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 잠시 도시에서 벗어나 산책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섬나라답게 바다가 펼쳐지기도 하는 것 역시 여행의 즐거움이겠다.

일본에 산 지 8년 정도된 저자는 '도쿄에 사는 사람들은 주말에 어디에 갈까?'라는 질문에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밝힌다. 도쿄에서 대중교통을 타고 산책하며 둘러볼 수 있는 곳 스무 군데를 소개한다. 책은 세 개의 주제로 구성되었는데, 일본 음식, 미디어 콘텐츠의 배경장소,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장소다. 도쿄에서의 목적지까지 가는 교통편과 목적지를 둘러보는데 얼마정도 걸리는지, 어디를 둘러보면 좋을지 간단한 팁을 줘서 꽤 실용적이다. 저자가 추천하는 가볼만한 곳도 사진과 함께 소개한다. 여행 에세이지만 여행 가이드로 사용해도 좋을 정도다.

일본과 우리는 같은 듯 참 많이 다르다. 비빔밥과 돈부리처럼 말이다. 저자의 말대로 모든 게 섞여야 맛있는 비빔밥과 각각의 맛을 유지해야하는 돈부리는 두 나라 국민성을 아주 잘 나타내준다. 서로 챙겨주고 남의 일에 관심이 많은 한국 문화와 지극히 개인적인 일본 문화의 차이. 어느 것이 좋다는 생각보다 가끔 한국적인 것이 그립기도 하고, 일본의 개인적인 성향이 편하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아무래도 일본 미디어 콘텐츠의 배경지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와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 소설 <설국>의 배경을 다녀온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배경 마을인 가가가와현 가마쿠라는 삼면이 산이고 한 면이 바다로 트여있다. 등산도 하고 바다도 볼 수 있는 이 곳을 언젠가 한 번 다녀오고 싶다. <이웃집 토토로>의 배경인 사이타마현 도코로자와는 마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신혼 때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숲을 걷고 싶어진다. 인위적인 광고판이 없이 그대로 펼쳐진 숲의 울창함이 사진 밖으로도 전해진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로 시작하는 소설 <설국>의 첫 문장처럼 기차를 타고 긴 터널을 통과하자 봄의 도쿄에서와는 다른 겨울 눈의 나라가 펼쳐진다. 어떤 느낌일까? 환상의 세계로 들어간 듯한 느낌이겠다. 묘사만으로 궁금해지는 도쿄 북쪽의 니가타현 유자와도 방문해보고 싶다.

음식이라면 일본갈 때마다 먹는 스시, 장어덮밥, 우동과 같은 메뉴 말고 소박한 맛이 일품이라는 가나가와현 에노시마의 시라스 덮밥(시라스동)이 궁금하다. 우리나라의 아주 잔멸치같이 생긴 시라스를 살짝 데치기만한 '가마아게시라스'와 날 것 그대로를 먹는 '나마시라스'를 흰 쌀밥에 가득 올린 시라스동의 맛이 어떨지 궁금하다. 회를 썩 좋아하지않기 때문에 나마시라스보다 가마아게시라스를 시도해보고 싶다.

소개한 곳들이 대단한 관광지가 아니어서 좋다. 놀이동산이 있고 체험관이 있는 그런 인위적이고 상업적이어서 외국 관광객들이 단체로 찾아갈 곳이라기보다, 한적하지만 일본 문화를 조용히 즐기다 오기에 좋은 곳들이다. 관광객이면서 관광객보다 현지인들을 만날 수 있는 곳, 배경을 알고 있으면 더욱 의미있는 곳, 짧은 시간 편하게 다녀올 수 있는 곳이라 매력적이다. 많은 것을 보고 느끼기 보다 그 곳의 특징을 살펴보고 자연 속에서 거닐다 오는 여행. 생각만해도 행복하다.

해상도 좋은 사진과 설명이 치밀한 책은 아니다. 뭔가 빛바랜 듯한 풍경 사진과 음식사진이 처음에는 좀 촌스러운 듯하다가 자꾸 보니 일본스럽다. 아쉽게도 지도가 없어 저자가 다녀온 곳이 도쿄 근처 어느인지 알 수가 없어 인터넷에서 지도를 찾아 9개 현이 어딘지 확인하며 읽었다. 지도 하나 있었다면 좋았겠다.

읽으면서 이것저것 궁금하게 만들고, 한번 가보고 싶게 하고, 먹어보고 싶게하고, 저자의 외로움도 조금 느끼다보면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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