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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란 - 오정희 짦은 소설집
오정희 지음 / 시공사 / 2022년 8월
평점 :
짧은 소설집이다. 정말 짧다. 한 편이 두 세장 정도다. 마치 사진 한 장에 실린 사연을 말하듯 일상의 한 순간을 포착해 그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시대배경이 요즘이 아니어서 첫 단편 <부부>부터 살짝 당혹스럽다. 부부가 도배를 하다 싸우고, 마루에서 전화벨이 울리고, 부엌 아궁이를 고치려 시멘트를 개고. 도대체 언제적 이야기인가?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다. 아무래도 70-80년대 이야기인 듯하다. 굉장히 오래 전 일인 것같지만 불과 40여년 전의 일인데도 아득하게 느껴진다. 이런 소설, 읽은지 꽤 오래다.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주로 주부인데, 남아선호사상과 고부간의 갈등, 남편이 들어오면 양복을 받아들고, 밥을 차리는 현모양처의 모습이다. 지금처럼 맞벌이를 하면서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상과는 사뭇 다르지만, 그 내면에서는 루틴한 결혼생활 속에서 뭔가 비판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실행으로 옮기지는 않는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나하나 감동적이거나, 통쾌하거나, 먹먹하거나, 반전이 놀랍다. 정말 글을 잘 쓴다.
<방생>은 읽고서도 한참동안 먹먹한 작품이다. 엄마와 딸 이야기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엄마는 아버지의 유품을 바로 팔아 네 아이들에게 강냉이와 엿을 물려준다. 딸은 그렇게 급하게 정리했어야하는지 엄마가 평생 원망스러웠다. 딸 역시 남편이 비명횡사하고 기일에 무덤에 찾아가는데 거기서 엄마는 또 쑥을 캔다. 그러더니 내려오면서 몸에 좋다는 잉어를 세 마리나 산다. 정말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즈음 엄마는 물가에 쭈그리고 앉아 방생해준다.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간절할 때마다 죽을 목숨인 물고기를 놓아주었다는 엄마. 가슴이 찡하다.
<떠 있는 방>은 아내의 눈에 비치는 우리나라의 사회상이다. 고층 아파트 옆 가난한 동네를 지나며 아이와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 곳에 사는 아이는 밤에 고층 아파트를 바라보며 별과 같다고 말한다. 곁에 있던 아이의 아버지는 그건 별이 아니라 공중에 붕붕 떠 있는 방이어서 무서울 거라한다. 그 안에 살고 있는 주부인 나는 빠르게 변화하는 한국사회가 불안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산을 깍아 잔디를 유지하기 위해 강한 농약으로 땅을 오염시키는 골프장을 욕했던 남편이 골프에 입문하고, 빈부의 차는 점차 벌어지고 점점 더 넓은 평수로 이사하며 부유해진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고 생각한다. 그런 자신 역시 용한 과외선생을 구하느라 애를 쓰면서 자기도 모르게 자신들이 비판했던 사람들과 똑같아져가는 것을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
42편의 짧은 소설 모두 개성넘친다. 촌철살인의 비판의식이 있는 모든 작품이 빛난다. 강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