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 (출간 15주년 기념 백일홍 에디션) - 박완서 산문집
박완서 지음 / 열림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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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여든에 돌아가신 박완서 작가(1931-2011)가 칠십이 넘어 쓴 글을 모은 산문집이다. 2007년에 나온 책인데 이번에 다시 3판 인쇄를 했다. 예쁜 책이다. 책 표지는 분홍인데 안의 글씨는 초록이다.

왜 호미가 책 제목일까 했는데, 정원 일을 좋아하는 작가에게 외국산 원예도구보다 좋은 것이 무쇠 호미이기 때문이란다. 손에 착착 감긴단다. 언젠가 외국인들이 아마존에서 정원일 할 때 호미를 사서 사용하면 만족도가 꽤 높다는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정말 대단한 발명품인가보다. 예전에 우리의 어머니와 할머니들이 김맬 때 쓰던 호미가 이제는 세계인이 애용하는 정원도구라니 자랑스럽다.

아무래도 수필이라 저자의 사생활이 많이 드러난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났지만 개성 양반집이어서 거의 조선시대의 삶을 살다가 서울에서 소학교를 다니며 일본어가 되지 않아 고생한 이야기부터, 나쁜 일본인을 만나본 일이 거의 없는 이유가 학교 선생님 외엔 일본인을 접할 일이 없었고 일본 선생님 조차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던 저자를 그냥 내버려둘 정도로 악하지않았다고 한다.

최근에 읽은 Linda Sue Park의 "When my name was Keoko"의 선희가 생각난다. 1931년생 선희가 1940년부터 5년간 해방을 맞을 때까지의 가족 이야기를 담은 소설인데, 마침 주인공 선희가 작가님과 동갑이다. 소설 속에서는 일제치하에서 독립운동하는 삼촌과 카미카제로 지원하는 오빠와 시도때도 없이 불러대는 점호가 묘사되었다. 박완서 작가는 이정도로 심각한 경험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정신대문제에 있어서 선희는 자신은 어려서 위험하지 않았다고 했으나 15세인 저자에게는 도피해야할 위험요소였다는 게 다르다.

인상적인 것은 해방 후 15살에 처음 한글을 배우고 고교2년에 우리말 책으로 가득찬 종로서관을 가는 것이 좋았다는 이야기다. 학교에서 우리말을 쓰지 못하게하고, 창씨개명으로 친구들 이름도 일본어이니, 한글을 제대로 배울 기회가 해방 후에나 온 것이다. 중학생 때 한글을 배우고 고등학생이 되어 종로서관의 책들이 우리말로 가득하였다니 얼마나 감개무량했을까. 종로서적으로 바뀌고 오래 존재하다가 문을 닫았을 때는 약속장소로만 이용하지 말고 책을 더 사줬어야하나하는 죄책감이 들었다고 하는데,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오랜만에 듣는 종로서적 이야기가 반갑다.

마지막 장에는 가족과 친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손녀에게 한글을 떼주려고 만든 동네 이야기책도 한 번 보고 싶고, '큰 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는 감사와 대견함과 신뢰를 표현한다. 딸이 누군가 찾아보니 호원숙 수필가다. 학교가는 길에 엄마의 작품을 가져갔다가 출판사에 전달하는 일을 했다는데 친구같은 딸이 아니었을까한다.

오랜만에 만난 박완서 작가의 수필,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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