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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한 그녀들 ㅣ 일본문학 컬렉션 2
히구치 이치요 외 지음, 안영신 외 옮김 / 작가와비평 / 2022년 2월
평점 :
이 책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발표된 일본 여성 작가들의 단편집이다. 메이지유신을 거치며 근대화가 진행되는 시기에 일본의 여성 작가들은 무엇을 주제로 소설을 썼을까?
다양한 여성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도 부모님이 정해준 남자와 결혼한 여성이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야기와, 이와는 반대로 결혼을 했는데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 설정은 우리의 소설에서도 익숙하게 등장한다. 전통적인 사고와 근대적 사고의 갈등을 그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좀더 자주적인 여성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결혼이 다가 아니며 자신의 일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자의식이 강한 여성이다. 그러나 결국 그녀도 결혼해 아이를 낳고 사랑의 이름으로 자기를 합리화하며 안주한다. 마무리가 아쉬운 것은 그 한계가 지금의 여성들이 느끼는 한계와 맞닿아 있어서지 않을까.
그래도 끝까지 자존감을 지킨 여자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하야시 후미코의 <철지난 국화>다. 젊었을 때 아주 예뻤던 게이샤가 아들뻘 되는 애인과 나이 들어 다시 만나며 대화하는 이야기다. 두 명의 심리묘사가 아주 섬세하고 시니컬하게 그려져있다. 옛 애인 다베가 찾아오기 전까지 긴은 자신이 나이들었음을 감추기 위해 열심히 단장한다. 그러나 결국 자신을 보기 보다 돈을 빌리려왔다는 사실을 눈치채고는 실망하며 절대 설득당하지 않는다. 둘은 겉으로는 추억을 그리워하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살해욕구와 경멸로 치닫는다. 심리적으로 스릴과 서스펜스가 넘친다. 생각과 행동이 이렇게도 천연덕스럽게 다를 수 있을까? 뭐가 되었든 지지않는 여자가 매력적이다.
이 책에 소개된 100년 전 일본 여성작가들의 이야기는 전통적인 여성상에 머무르지 않으려고 부단히 저항하고 거부하는 여주인공을 내세우지만 결국 현실에서는 그리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 이후로도 기술과 문명은 빠르게 바뀌지만 여성에 대한 생각은 크게 달라진 게 없는 듯 하다. 그래서 이 책에 소개된 작품들은 여전히 발칙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