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 더클래식 한국문학 컬렉션 1
김승옥 지음 / 더클래식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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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가 김승옥 탄생 80주년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12편의 단편 소설을 수록해서 출간했다. 수록된 단편 소설은 대표작인 <무진기행>부터, 데뷔작인 <생명연습>과, <서울>, <1964년 겨울>, <야행>, <역사>, <차나 한 잔>, <그와 나>, <염소는 힘이 세다>, <건>, <확인해 본 열 다섯 개의 고정관념>, <다산성>, 그리고 그의 마지막 작품인 <서울의 달빛 0장>이다.

이 중 대표작인 <무진기행>과, 데뷔작인 <생명연습>, 그리고 마지막 작품인 <서울의 달빛 0장>을 이야기해보자.

1964년작인 <무진기행>은 필사책으로 많이 추천받는다. 그 이유가 궁금했는데, 감수성 넘치는 아름다운 비유때문이 아닐까 한다. 적절하고 섬세한 비유는 경험하지 않아도 묘사하는 바가 어떤 것인지를 느낄 수 있게 한다. 이를테면,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9)," "언젠가 여름밤, 멀고 가까운 논에서 들려오는 개구리들의 울음소리를, 마치 수많은 비단조개 껍데기를 한꺼번에 맞부빌 때 나는 듯한 소리를 듣고 있을 때, 나는 그 개구리 울음소리들이 나의 감각 속에서 반짝이고 있는 수없이 많은 별들로 바뀌어져 있는 것을 느끼곤 했었다(27)." 상상력과 관찰력 가득한 비유라 독자의 상상력도 최고로 끌어올려준다.

1962년 데뷔작인 <생명연습>은 두 가지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한 교수의 첫 사랑 이야기와 그 학생인 나의 어린시절 이야기다. 한 교수는 유학을 떠나기 전 사랑하는 여인을 겁탈함으로써 뜨거웠던 사랑을 식혀 버린 후 떠날 수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직도 젊은 어머니는 아버지와 외모가 비슷한 외간 남자들을 끌어 들인다. 이를 미워한 형은 어머니를 살해하자고 제안하지만 누나와 나는 그런 형을 밀어버림으로써 어머니를 지킨다. 한 교수는 자신의 행동을 평생 고뇌하는 듯하고, 형에 대한 사건은 반전이다. 사랑을 주제로 하지만 둘 다 씁쓸하다. 집착하지 않고 내버려두었다면 어땠을까? 교수는 뜨거운 사랑을 가슴에 안고 떠났어야하고, 형은 어머니의 공허함을 받아들여야하지 않았을까?

마지막 작품인 <서울의 달빛0장>은 기내 옆자리에 앉게 된 예쁜 여자가 여배우라는 것을 나만 모르는 나는 첫눈에 반해 결혼한다. 첫날 밤 아내가 처녀가 아님에 실망한다. 가난 때문에 몸을 파는 여자라는 것을 알았지만, 결혼하고도 호스티스로 들어온 아내와 맞닥뜨리자 이혼한다. 아내에게 약간의 위자료를 전하러 간 자리에서 나는 다른 남자들처럼 찾아가도 되냐고 아내에게 물어본다. 잔인하고 쪼잔하다. 남편은 첫날 밤 자신의 여자관계에 관한 과거를 아내가 용서한 것은 당연시하지만, 아내의 과거는 끝내 끌어 안지 못한다. 제목과 매치가 되지 않아 조금은 당혹스럽다.

이 세 편 모두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남자 주인공들은 각자의 사랑에 모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느낌이다. <무진기행>의 나는 서울에 가고 싶다는 음악선생 하인숙과 하룻밤을 보내지만 결국은 가정으로 돌아간다. <생명연습>의 한 교수는 사랑하는 여자를 겁탈하는 것으로 사랑이 식었다고 스스로를 속이지만 평생 그렇지 않음을 알아차린다. <서울의 달빛0장>의 나는 아내의 과거와 현재를 포용하지 못하면서도 이혼 후 아내를 다시 찾아가겠다고 아내를 욕보임으로써 사랑을 떠나보낸다. 남자 중심의 사랑 이야기로 여성의 무게가 좀 약하지 않나 싶다. 60년대의 시대상황을 반영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단편이지만 영화를 만들 수도 있을 정도로 촘촘한 구성이다. 특히 마지막의 펀치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무진기행>의 쓴 편지를 찢는 장면, <생명연습>의 형이 자살하는 것, <서울의 달빛0장>에서 다른 남자들처럼 아내를 거리의 여자로 만들어 버리는 남편의 마지막 말이 이야기 내내 진행되던 방향을 틀어 놀라움을 던지고 끝난다. 그래서 매 편이 흥미롭다.

김승옥의 단편소설은 두고두고 읽어도 좋을 아름다운 문장이 가득한 책이다. 짧지만 강렬함이 있고 60년대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광주민주화 운동 소식을 듣고 절필하였는데 아쉽다. 마음을 바꿔 좀 더 많은 소설을 내시기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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