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의 일 - 작은도서관의 광활한 우주를 탐험하고 싶은 당신을 위한 안내서
양지윤 지음 / 책과이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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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나는 늘 책에 둘러싸여 있는 도서관 사서가 좋아 보인다. 사서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왠지 낭만적이다. 햇볕 가득 들어오는 창가에 앉아 이용자가 원하는 책을 추천해 주고, 컨설팅해주는 일을 할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한다. 실제로는 생각보다 책 정리가 몸을 많이 쓰는 노동이고, 도서관 행사를 기획하느라 밤낮없이 일해야한다는 소리도 있다. 사서는 무슨 일을 할까?

동두천 사동초등학교에 옆에 붙어 있는 '지혜의 집'은 사서 혼자 꾸려가는 작은 도서관이다. 이 책은 이 작은 도서관의 사서가 되어서 막막했던 시작부터 자원봉사로 이루어진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운영하는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사서의 일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일본어 번역가이자 10년 넘게 사서로 일하고 있다.

처음 먼지 쌓인 작은 도서관을 청소하는 것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학교 내에 위치하지만 저자가 관리하는 작은 도서관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소규모 도서관으로 학생과 동네 주민들을 위한 공간이다. 전임자가 없이 방치되어 있었기에 대청소를 하고 출근을 한다. 방문자도 없고, 간혹 있다해도 대출과 반납의 한정된 업무만을 하며 이 일에 회의를 느낀다. 그러다가 2년 계약이 무제한으로 연장되면서 본격적으로 도서관에 관한 모든 전권이 주어진다. 예산을 짜고 그에 맞추어 책을 골라 배가하고, 도서관을 활성화하기 위해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아 지속적인 이벤트와 프로그램을 계획하며 성공한다.

몇 가지 프로그램 중에서 사서가 직접 진행하는 '일본어 교실'은 솔깃하다.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 외국어를 가르치는 것이 매우 의미있어 보인다. '여행회화 습득과 일본 그림책 읽기'라는 목표가 매우 매력적이고 성취가능하게 구체적이다. 외국어를 가르쳐보고 배워본 경험에 의하면 뚜렷한 목표가 있으면 가르치고 배우는 방향과 정도가 명확하고 수월한데, 막연히 기초 중국어, 중급 일본어 식으로 목표없이 교재만 떼는 외국어 교실은 금방 흥미를 잃게 한다. 저자가 얼마나 숙고해서 만든 프로그램인지 알 수 있다.

도서관 방문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소소히 재미있다. 대출이 안되는 인기 만화책을 품안에 넣고 나가려고 했던 아이, 비오는 토요일 집잃은 고양이를 데려와 한 켠에 두고 책을 읽던 자매, 자신이 가르치는 일본어를 더 잘하기위해 스터디를 만들어 모여 공부하던 세 멤버들의 이야기들이 모두 그림처럼 그려진다. 글을 참 잘 쓴다.

저자의 낯선 단어 선택에 간혹 사전을 찾아 보기도 한다. 이를테면, '무람없다'라는 말이 예의를 지키지 않고 삼가고 조심함이 없다라는 뜻임을 처음 알았다. 또한 '형제'라는 말도 그렇다. 저자가 언니와 사촌언니를 언급했고, 필체도 상당히 여성스러워 당연히 여자라고 생각하며 읽고 있는데 223쪽에서 느닷없이 '우리 삼형제'라는 말에 멘붕이 왔다. 사전을 찾아보니 남매를 포함해 형제라고 하는 것으로 재 확인하긴 했지만, 보통의 경우 '삼형제'는 남자 형제 세 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사소하지만 혼란스러웠다.

이 책은 굉장히 문학적이고 가독성이 좋은 에세이다. 마치 소설을 읽듯이 유려한 문체를 통해 글쓴이의 세세한 감정상태를 잘 상상해볼 수 있다. 읽으며 저자가 느꼈을 안타까움, 작은 미소, 가슴 답답함, 뿌듯한 성취감을 마치 내가 경험하듯 그렇게 느끼게 하는 필력이다. 요란하지 않지만 조근조근 부드럽게 이야기하는 저자의 책을 마지막 페이지까지 재미있게 읽어 나갈 수 있다. 즐거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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