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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 ㅣ 에디터스 컬렉션 10
장 폴 사르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문예출판사 / 2020년 12월
평점 :
장 폴 사르트르(1905년-1980년)는 20세기를 대표하는 프랑스의 작가이자 무신론적 실존주의 철학자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 알베르 까뮈와 한 시대를 살 았다. 1938년 출간된 이 책 '구토'는 샤르트르의 첫 장편소설이자 그를 장래가 촉망되는 작가의 반열에 올린 작품이다.
이 책은 일기 형식이다. 그러나 읽어 내리기가 녹녹치 않다.
주인공 로캉탱은 30세다. 18세기 롤르봉 후작에 대한 역사적 연구를 마치기 위해 부빌 시에 체류하고 있다. 호텔, 카페, 시립 도서관을 오가는 단조로운 생활을 하며, 일기를 쓴다. 사실적인 묘사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상세히 담은 일기에는 '구토'와 '존재'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그가 처음 구토를 느낀 것은 바닷가에서 아이들이 물수제비를 뜨는 것을 보며 돌멩이를 집어 들었을 때이다. 돌멩이에서 구토를 느낀 이후로 일상에서 사물로부터 구토를 느끼는데, 사람이 물체를 만지는 것이 아니라 물체가 나를 만지는 것을 느낀다고 자각할 때마다 구토증이 난다. 공원에 뒹구는 종이, 벽, 멜빵같은 주변 사물에서 참을 수 없는 구토를 느낀다. 흑인 여가수의 재즈 노래인 '섬 오브 디즈 데이즈(Some of these days)'를 들을 때를 제외하고.
로캉탱의 주변에는 애인인 카페사장 안니와 도서관의 책을 알파벳 순으로 읽고 있는 독학자가 있다. 독학자는 7년간 L까지 읽어내렸고 아직 6년을 더 읽겠다는 목표가 있다. 로캉탱은 그를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가끔 도서관에서 만나면 말을 나누고 한 차례 점심을 함께 한다.
사건이라할 만한 것은 독학자와의 점심식사와 4년만에 만난 안니와의 대화가 전부다. 독학자는 지적인 로캉탱에게 호감을 느끼고 점심을 함께 하는데, 로캉탱은 독학자의 말에 집중하지 못하고, 속으로는 그를 비웃기도 하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연신 살피느라 바쁘다. 결국 구토를 느끼고 자리를 뜬다. 주인공은 롤르봉 후작에 대한 글을 더이상 쓰지 않기로 결심한 후 파리로 건너가 안니를 만난다. 무대에서 연기를 하며 완벽한 순간을 실현하고자 했던 그녀는 연기를 그만두고 남자와 여행 중이라며 로캉탱에게 이별을 고한다. 부빌로 돌아온 로캉탱은 자유를 느낌과 동시에 절망한다. 3년 전 부빌로 들어온 이래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부빌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도서관에서 다시 보게 된 독학자는 소년에게 불미스러운 행동을 하고 도서관에서 쫓겨난다. 부빌을 떠나는 날 마지막으로 재즈를 들으며 소설을 써보겠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뚜렷한 사건 전개 없이 주인공이 구토를 느끼는 심리 묘사와 왜 중요한지 모르겠을 주변의 사물과 사람들에 대한 관찰묘사가 길게 이어진다. 사건이 빠르게 진행되고 해결되는 것에 익숙한 독자에게는 이러한 묘사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내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찾아내지 못하며 절망하게 한다. 이 묘사가 다음에 벌어질 어떠한 사건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의미가 없다. 대신, 왜 로캉탱이 구토를 느끼는지를 집요하게 물어야한다.
사물과 인간은 구분된다. 사물은 인간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존재의 이유가 있는 것일 뿐이지만, 인간은 그 자체가 존재이므로 다른 사람에게 필요로 하지 않아도 그 자체만으로도 중요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주인공은 사물에게서도 존재 그 자체를 느낀다. 이것이 불편하고 참을 수 없어 구토를 느끼게 된다. 내가 필요해서 만든 로봇이 인간의 자리를 차지하는 느낌정도이려나. 그러면 로봇은 더이상 내가 필요해서 만든 존재가 아닌 독립적인 의미를 가진 대상이 되는 것이고 내게 위협이 될 수도 있다. 그 위협적인 느낌이 구토로 구현되는 것이 아닐까.
사르트르가 자신의 실존주의 철학이 이 책에 다 들어 있으며 이 책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했다고 하는데 몇 번을 더 읽어야 이 말 뜻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근래에 읽은 고전 중에서 가장 어려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