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롭게 살겠다, 내 글이 곧 내 이름이 될 때까지
미셸 딘 지음, 김승욱 옮김 / 마티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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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지에 깐깐하게 생긴 할머니가 팔짱을 낀 채 카메라를 잡아먹을 듯이 응시하고 있다. 'Sharp'라는 글씨가 이 할머니에게서 뿜어져 나온다. 이 할머니는 2006년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존 디디언(Joan Didion, 1934-)이다. 영화비평가이자 소설가이다.

이 책은 저널리스트이자 비평가인 미셸 딘이 192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미국에서 활약한 10명의 여성 작가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교류와 경쟁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열 명의 여성 작가들은 비평가이자 저널리스트, 작가들로서 당시에 문학적, 정치적 논쟁에서 남성에 뒤지지 않는 예리한 소리를 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 책의 원제는 <Sharp: the Women Who Made an Art of Having an Opinion>이다.

열 명의 여성 작가들은 파커, 웨스트, 아렌트, 매카시, 손택, 케일, 디디언, 에프런, 애들러, 맬컴이다. 이들이 활동했던 시대는 여성의 차별이 당연시되는 시대였고, 그에 대한 여성참정권운동, 패미니즘, 여성주의운동으로 사회적 지위를 확보하고자 하였다. 파커, 웨스트, 손택, 케일, 에프런, 맬컴처럼 여성주의운동에 참여한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저자는 열 명을 소개하면서 이들을 가장 잘 묘사할 수 있는 인용문을 한 페이지에 올려두었는데, 각자의 성향을 알 수 있다.

1.도러시 파커(1893-1967), "파커는 펜을 망치처럼 휘둘렀다"

2.리베카 웨스트(1892-1983), "그녀의 혀는 예리하고, 그녀는 순진함 때문에 고생하지 않는다"

3.한나 아렌트(1906-1975) "젊은 아렌트는 이미 무자비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4.메리 매카시 (1912-1989) "그녀는 언제나 무분별한 정도로 자신을 솔직하게 열어 보였다. 여러 면에서 '활짝 펼쳐진 책' 같은

사람이었다."

5.수전 손택 (1933-2004) "예리한 여자, 현대문화를 발톱으로 찢어발기며 자신의 길을 찾아 나아가고 있는 사람"

6.폴린 케일(1919-2001) "케일은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잠재된 성차별주의를 공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7.디디언 (1934- ) "디디언은 직설적인 싸움보다 우아한 공격을 선호했다"

8.노라 에프런 (1941-2012) "에프런은 농담과 코미디를 좋아했다. 이 두가지가 생존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9.레나타 애들러 (1937-) "애들러는 아름다움으로 독자를 눈부시게 만들기보다 자신의 생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고 싶어했다"

10.재닛 맬컴 (1934- ) "맬컴은 비판적이지만 무자비하지는 않다"

이들간의 관계도 흥미롭다. 이들은 반골기질이 있어, 서로 같은 무리로 분류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오히려 서로 비판적이었다. 손택이 매카시를 만나 "나를 대신할 사람"이라는 말에 손택이 "평생 매카시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 전혀 없다"고 맞받아 치는 말이나, 디디언, 케일, 손택은 같은 캘리포니아 출신이지만, 함께 언급되는 것을 선호하지 않았고, 오히려 케일은 디디언의 작품을 싫어한다고 직선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들은 주로 신문사나 잡지에 글을 기고하고 서평을 쓰면서 시류에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였다. "작가들이 우정을 쌓으면서도 서로의 글을 비판하는 것은 흔히 있는 평범한 일이다(233)"라고 하지만, 서평을 쓸 때에 매우 직선적이고 감정적이어서 상대에게 상처를 줄 만한 표현이 난무한다. 마음의 상처를 입어 소송이 진행되기도 하고, 다시는 보지 않는 사이로 악화되기도 했으니 전쟁터같은 분위기다. 현재의 미국은 어떨지 궁금하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엄청난 독서광임이 느껴진다.10명의 전기는 물론 그들이 발표한 글이나 문학작품을 비평가의 눈으로 분석한다. 이를테면, 아렌트가 뉴욕에 와서 쓴 글들이 "같은 테마가 지겨울 정도로 반복되었다. 이 글들을 순서대로 읽다 보면, 감동을 느끼기 보다는 장광설을 듣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139)" 라고 비평한다. 또한, 여성 지식인들이 늘 훌륭한 작품만을 발표한 것도 아니고, 중상류 이상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남성 지식인들 사이에서 스스로 차별받는 여성의 존재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점도 지적한다. 무엇보다 독일과 프랑스에서 활동하다 30세가 넘은 나이에 뉴욕으로 온 아렌트가 미국 흑인의 인종차별에 대한 의식없이 '차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점은 그녀의 한계를 잘 드러내 준다. 이러한 점이 이 책의 강점이다. 유명한 여성지식인들의 한계점도 객관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은 여성학과 20세기 미국 문학과 저널리즘에 관심이 있다면 일독하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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