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이야기 2 - 진보 혹은 퇴보의 시대 일본인 이야기 2
김시덕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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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혹은 퇴보의 시대

이 책은 <일본인 이야기> 시리즈 5권 중 두번 째 권이다. 저자는 역사를 시대순이 아닌 쟁점을 잡아 저술하는 시리즈를 내는데, 이번 책은 '일본 농민의 일생과 그들을 치료해준 의료, 의학'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이 책의 소제를 '진보 혹은 퇴보의 시대'라고 달았는데, 에도시대(1603-1868)에 지배층의 쇄국정책은 퇴보이고, 피지배층의 생존권 유지에 있어서는 진보라고 설명한다. 지배층인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문을 연 에도시대는 데지마 인공섬에 네덜란드인들을 격리시키고 그들을 통해서만 교섭을 하였기 때문에, 여러 유럽국들과 다방면에서 교류하며 발전을 이뤘던 전국시대보다 퇴보했다. 반면 피지배민들은 이러한 쇄국정책으로 당시 군사경쟁에 휘말려 있던 유럽과는 다르게 생존을 보장받으며 비교적 평화로운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진보한 것이다. 지배층의 착취는 심했지만 전쟁에 투입되지 않았으니 목숨은 건졌던 때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보통 왕과 같은 지배자들의 역사이고, 일반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크게 궁금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흥미롭다. 역사인구학을 통해 피지배층의 삶을 엿볼 수 있는데, 에도시대에 카톨릭교도를 없애기 위해 농민들을 불교종파에 속하게 했고, 절에 보관된 피지배층의 출생, 결혼, 사망을 기록한 <과거장>과 같은 기록을 통해 당시 서민들의 삶을 유추할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이 흥미롭다.

한중일 동아시아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로서 저자는 일본 농민의 삶을 우리나라와도 비교하는데 좀 불편한 부분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에도시대의 영아살해는 기근이 심했던 일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조선시대 북부지역에서 부역을 피하기 위해 사내아이를 묻었던 것처럼 피지배층에서 자행되었다고 한다. 또한, 에도시대의 여성이 자유로이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는 일본 여성이 성적으로 자유롭다는 사실은 옳지 않다. 이 역시 조선에서도 양반을 제외한 계층에서 행해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럴리가..'하는 근거는 주석을 통해 제시하므로 반기를 들기 어렵다.

또한, 오해하고 있는 부분도 지적한다. 이를테면, '독농'은 근면하게 농사를 짓는 농민을 말하는데, 이러한 일본의 근면함이 일본인의 민족성이고, DNA에 타고 전해진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실은 일본에서 중세까지 예속민의 노동은 채찍을 맞아 가며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고역을 의미했고, 에도시대에 독실한 농민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되어 현재에 이르는 것이다. 신분적 한계에 의해 자행된 근면함이지 유전적일 수 없고 그만큼 농민들의 삶은 피폐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성실하고 똑똑한 민족성을 지녀서 세계 10대 강국을 만들어냈다는 주장은 허무맹랑하다(178-179)"고 주장한다.

책을 읽으며 '대청제국'이라는 이름을 굳이 사용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대로 보통 '청', '청나라'라고 칭하는 중국의 왕조를 왜 생소하게 '대청제국'이라고 부를까? 사전을 찾아보니 같은 의미이지만, 굳이 학교교육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대청제국'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밝히고 있지 않아 궁금하다.

농민의 일생 외 또 하나의 주제인 에도시대 의학에 관한 이야기는 좀 생소하지만 흥미롭다. 일본은 에도시대를 포함해 1177년에서 1887년 메이지 정부까지 근 천년간 농민들은 신분상승을 꾀할 방법이 없었다. 중국과 우리에게 있었던 과거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무사들은 지식인을 낮게 취급했고, 지식인들은 신분상승을 위해 중국에서 전해온 한의학을 읽고 의사로 이름을 얻은 후 막부나 번에 고용되어 관리가 될 수 있었다. 따라서 일본의 의사는 농민의 신분상승 방법이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송에 유학한 승려가 의사를 겸하였고, 글을 읽을 줄 아는 유학자가 의사를 겸하는 유의가 중심이 되다가, 점차 일반인도 읽을 수 있는 가나로 씌여진 의학서가 나오며 대중화되었다. 그리고 백여년간 유의들은 난의학을 금지하다가 1858년 쇼군의 치료를 난의학자 이토 겐보쿠가 맡게 되고, 막부로 임용되면서 난의학이 발전하기 시작한다. 난의학의 가장 큰 공헌은 우두법으로 천연두를 예방한 것이고, 서양의학소(도쿄대 의학부의 전신)를 설치하며 체계화된다.

사실 난의학은 16세기 전국시대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해부학과 외과 치료법은 물론, 한센병 치료 병동을 포함한 종합병원, 고아원과 같은 시스템을 제공했다. 그러나 도쿠가와 막부는 쇄국을 통해 퇴보되었고 다시 회복되기까지 3백년이 걸린다.

이 책은 마치 답사 여행기를 읽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본문에서 언급하는 많은 사람들의 집이나 묘, 묘비, 절과 같은 실물 사진들이 많다. 에도시대의 유물이 현재까지 존재한다는 현실감을 높이면서, 동시에 직접 찍은 사진인 것으로 보여, 열심히 역사의 흔적을 찾아 다닌 저자의 노력이 느껴진다.

일본에 대해 느끼는 우리의 감정은 곱지 않다. 국뽕으로 이 책을 읽게 되면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 속 피지배층의 삶은 일본이나 우리나 유사한 점이 의외로 많음을 깨닫게 된다. 서장에 적은 저자의 말이 새삼 의미심장하다.

"한 명이라도 외국인 친구가 있다면 국수주의자가 될 수 없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더 많은 한국 시민이 더 많이 해외에 여행, 연수, 유학을 가서 더 많이 해외를 보고 느끼고 친구를 사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 것만이 동북아 국가들의 지배집단이 일부러 국가간의 갈등을 조장해서

자신들의 이득을 챙기는 현재의 구도를 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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