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위태한 유산 - 8명의 가족이 다 때려치우고 미국 횡단 여행을 떠난 이유
제준.제해득 지음 / 안타레스(책인사) / 2020년 8월
평점 :
아들 제준과 아빠 제해득이 쓴 이 책은 가족 미국 횡단 여행기다. 2019년 4월 8명의 가족이 40일간의 여행을 떠난다. 아빠, 엄마, 큰 매형, 큰 누나, 작은 매형, 작은 누나, 22개월 조카, 그리고 나다. 이들은 미국 서부에서 동부를 캠핑카로 횡단을 한 후, 캐나다에서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고, 하와이로 가서 여행을 마친다.
책은 19세 아들의 관점에서 쓰다가 50대 중반 아버지 관점에서 번갈아 쓰기 때문에, 저자가 바뀌는 관점에 따라 이번은 누구 이야기일까 생각하며 읽는 재미가 있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여행을 하며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아들의 관점은 젊은이의 패기와 비판적 사고가 느껴지는 반면, 아버지는 인생에 대한 통찰력과 약간의 엄격함과, 뒤에서 지지해주는 묵직한 리더십이 느껴진다. 화려한 사진과 여행지에 대한 세세한 정보 보다는 한 장소에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를 적었기 때문에 여행지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많지 않다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에서 시작하여 감동적인 요세미티 국립공원, 생각보다 금방 질리는 그랜드 캐년, 밤과 낮이 다른 라스 베가스, 일절의 서비스가 없는 뉴욕행 로컬 비행기를 타고, 우여곡절끝에 자유의 여신상을 만나는 크루즈는 노을과 더불어 아름답다. 특히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1시간 남짓 돌아보려는 시도는 무모해 보인다. 정말 그 앞에 숙소를 잡고 일주일 내내 봐도 성에 차지 않을 텐데 말이다. 많이 아쉬웠을 일정이다.
아들은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중이었지만, 여행을 통해 약 없이 이 병과 함께 잘 지내기로 한다. 그가 설명하는 '공황장애'란 '옆에서 누가 놀래키면 긴장하고, 심장이 미친 듯 빨리 뛴다. 위험에서 나를 지키려는 몸의 자동반응 때문이다. 필요 이상으로 이 반응의 횟수가 많아지는 것이 공황장애다'. 사전적인 의미보다 조금 더 안타깝게 느껴지는 병이다.
여행에서는 각자 업무를 분담해서 효율적으로 움직이다가도 일이 꼬이기도 한다. 이를 테면, 여유를 부리다가 비행기표를 사지 못해 일정이 하루 더 소비된 날도 있고, 지도를 보지 않고 움직여 만나기로 한 시간에 제대로 나타나지 않아 아버지가 화가 난 상황도 있다. 아버지는 사업을 오랫동안 해 와서 규율에 엄격한 듯 한데 일정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면 화를 삭히며 스스로의 생각을 진정시킨다. 아버지의 생각을 들어보자.
'이번 여행을 통해서 선장은 동승한 선원들을 평가하고 징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평가하되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대안을 찾아주며 포용하는 바다가 되어야한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165, 아버지의 글).'
가는 곳곳마다의 사진과 감상 위주의 일반 여행기와는 다르게 여행 내내 느끼는 감상과 소소한 행복, 가족 간의 다툼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옳은지에 대한 마음 속 이야기를 쓰고 있다. 8명이 작은 캠핑카에서 한 달 넘게 지내는 것은 쉽지 않았을 텐데, 일상으로 돌아온 다음에도 아버지는 앞으로 또 다시 이번 여행 같은 시도를 계속하며 유산으로 남겨줄 것이라고 다짐한다. 멋진 유산이다.
구성원이 독특했고, 캠핑카로 움직이는 것이 신기해서 읽게 된 책이다. 구성원 중에서 22개월짜리 손녀가 가장 걱정이 되었으나, 의외로 가장 건강하게 그리고 모든 어른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였다니 반전이다. 아이는 이 여행을 온전히 기억하지는 못해도 자기 안 어딘가에 이 여행의 경험을 쌓았을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여행 에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