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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큰 기술, 일본 소부장의 비밀 - 왜 지금 기술을 중시하는 일본 기업에 주목하는가?
정혁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8월
평점 :
단기간 압축성장을 해온 우리 경제의 약점은 부품,소재,장비(소부장)에 대한 해외 의존도가 높다. 외국에서 부품을 수입해서 조립가공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2019년 일본은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핵심소재인 극자외선(EUV) 포토레지스트(감광제),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3개 품목의 대 한국 수출규제를 발표했다. 우리 스스로 자립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그러면 독일과 더불어 세계의 소부장 시장을 이끌어가고 있는 일본 소부장 기업의 비밀은 무엇인가? 어떻게 현재의 기업을 이루게 되었는가? 코트라 해외조사부에서 35년의 재직기간 중 17년을 일본에서 근무하여 이 분야에 정통한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책은 2부로 구성된다. 1부는 일본 소부장 기업의 세 가지 비밀, 2부는 일본 소부장 기업의 혁신사례 12기업을 소개한다. 12개의 기업은 돗판과 다이닛폰, 니혼덴산, 마부치모터, 시마노,도레이, 닛토덴코, JSR, 신에츠화학공업, 화낙, 키엔스, 토요타, 소니다.
일본 소부장 기업의 비밀 3가지는 '장인정신과 장수기업', '선진문물 도입에 적극적이었던 일본', '과학기술과 노벨상'을 꼽는다. 먼저, 어떤 분야든 천하제일이 되면 부와 명예를 쥐는 시스템으로 장인정신이 발달한 일본은 중국이나 우리나라와는 달리 기술자들을 우대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 기술이 가업으로 이어져 장수기업이 많다. 또한, 개항시기에 일본은 '데지마'라는 인공섬에 서구인을 머물게 하며 그들로 부터 서구문물을 습득하며, 나아가 미국과 유럽의 여러 나라를 순방하며 근대화의 기반이 될 문물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특히 산업혁명 후발국인 독일이 눈높이에 맞는 수준이어서 많이 모방한 것은 독일의 비스마르크의 부국강병과 식산흥업을 추진하기로 하고, 독일식 헌법을 모델로 제국헌법을 제정한다. 가장 부러운 것이 과학분야에서 24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여 미,독,영,프에 이어 세계5위 노벨과학상 수상국이라는 것이다. 연구테마는 상업화될 수 있어서 일본 부품소재분야의 경쟁력을 뒷받침해준다. 그 배후에 존재하는 '이화학연구소'는 1917년 설립된 '코펜하겐 정신'의 자유스러운 토론이 이루어지는 연구분위기를 자랑한다. 장기연구를 위한 연구비 지원은 물론, 일본 유일의 자연과학 종합 연구기관이며, 다수의 노벨상수상자를 배출한 세계적 권위의 연구기관이다. 연구성과로 기업을 만들어 80%의 연구비용을 이들 기업으로 부터 충당하는 것도 현명한 경영이다. 연구비용이 받침이 되므로 113번째 원소(Nihonum)를 만들어 내기까지 9년간 400조 번을 실험할 수 있었다.
일본의 소부장 기업은 기술력에서 세계적인 경쟁우위를 갖을 뿐 아니라 높은 영업이익을 내는 알짜배기 회사다. 표준화를 통해 가격경쟁력을 확보한 '마부치모터'의 경영전략이나, 관리자의 수를 줄이고 제품의 생산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R&D와 생산직인원에 집중하는 '키엔스'의 경영 스타일이 인상적이다. 특히 해외시장 개척에 집중한 반도체 실리콘 웨이퍼 세계1위의 '신에츠화학공업'과 포토레지스트 세계 1위 'JSR'이나, 세계시장에서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는 기업과 경쟁하기 위해 창의적인 전략을 낸 자전거 부품의 강자 '시마노'가 큰 성공을 이룬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 소부장 기업들도 국내뿐 아니라 해외시장으로 진취적인 도전을 해주었으면 한다.
일본 소부장 기업들이 모두 성공가도만을 달려온 것이 아니다. 위기를 혁신으로 극복하고, 시장의 흐름을 잘 따르기도 하고, 아주 오랫동안 연구개발한 것이 흑자로 돌아서기 까지 인내한 덕분이다. 토요타같은 경우 1950년 GHQ의 긴축정책으로 기업도산의 위기까지 갔다가 한국전쟁으로 V자 성장을 하였고, 동양의 듀폰이라는 '도레이'는 탄소섬유 세계1위가 되기까지 40년간 적자를 참고 기다렸고, CNC와 로봇 생산의 절대강자 '화낙'은 9년만에 흑자로 돌아서기까지 자신의 기술력을 믿고 기다렸다. 이러한 문화에 감탄할 뿐이다.
이 책은 일본 소부장 기업들이 성공하기까지, 설립에서 현재까지의 역사를 간결하지만 속속들이 서술한 책이다. 장인을 우대하는 기본 문화 위에, 근대화를 거쳐 급부상하는 모멘텀을 잘 잡은 것 뿐 아니라, 막대한 연구비용을 대줄 수 있는 연구소가 있는 것이 일본을 세계5위의 노벨과학상 수상국이자 기술 강국으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성공한 12기업의 사례를 통해 변곡점에서 고비를 잘 넘긴 결정권자의 의지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도 유심히 볼 수 있다. 노벨과학상 수상이 순수학문적 성취가 아니라 상업적으로도 연결되는 것을 보며 우리 역시 장기간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회사차원, 학교차원, 정부차원의 지원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노벨상은 개인이 수상하는 것이지만, 그 개인 뒤에 막강한 조직의 힘이 받쳐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