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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그림 ㅣ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9
히사오 주란.마키 이쓰마.하시 몬도 지음, 이선윤 옮김 / 이상미디어 / 2020년 6월
평점 :
이 책은 20 세기 초 중반에 활동했던 일본 작가 3명의 단편 추리소설을 모은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중 아홉 번 째 책이다. 1920-1940년 대에 쓰여진 작품들이다. 히사오 주란의 <호반>, <햄릿>, <나비그림>, 마키 이쓰마의 <사라진 남자>와 <춤추는 말>, 하시 몬도의 <감옥방>이 수록되어 있다. 작가별 수록 작품을 살펴보자.
히사오 주란(1902-1957)은 소설가다. 연극을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 유학까지 다녀오고, 아시아태평양 전쟁 중에 종군했는데, 한동안 행방불명 되었다가, 1944년 무사히 돌아왔다. 이 책에 실린 그의 단편을 통해 일본 화족(귀족)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영국유학을 다녀왔지만 열등감을 가진 <호반>의 주인공, 엄청난 재산가인데 연극에 빠진 <햄릿>의 주인공, 일류가문의 아들로 어머니와 누나들이 전쟁에서 안전한 곳에 배치시킨 부대에서 활동하다 돌아와 갈등하는 <나비그림>의 주인공이 그렇다. 모두 상류층의 나약한 남자들이 주인공인데, 당시 상류층의 모습을 그대로 소설에 반영한 듯하다.
마키 이쓰마(1900-1935)는 미국 유학 후 바로 학교를 그만둔 후 미국 전역을 떠돌고, 화물선 선원으로 생활한 뒤 소설가로 등단한다. 그의 작품 <사라진 남자>는 선원이 주인공이다. 같이 잠자리에 들었던 남자가 사라지면서 내가 살인범으로 몰린다. 경찰에 체포되자 도망쳐 무조건 외국 배에 상선한다. 그 곳에서 의외의 남자를 만나는데 주인공은 영원히 떠돌기로 결정한다. 굉장히 짧은 소설인데도 긴장과 박진감을 그대로 끌어올린다. 결말의 반전도 흥미롭다.
하시 몬도(1884-1957)는 작가면서 의사다. 그의 작품 <감옥방>의 반전은 안타깝기만 하다. 죽음만이 이곳을 떠날 수 있는 열악한 작업장에서 노동자들은 도쿄에서 오는 정부관리에게 현 상태의 문제점을 일러바칠 기회를 잡는다. 그러나, 고위간부는 연극에 불과하고, 문제점을 토로한 사람들은 처치된다. 그 후 진짜 관리가 도착했을 때 노동자들은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약자들이 큰 권력에 의해 농간당하고 개혁을 하려는 의지가 꺽여버리는 사회가 낯설지 않다.
추리소설이라고 하기에 미스터리에 가까운 소설들이다. 선명하게 사건의 결말이 드러나 누가 범인이고 왜 그랬는지를 밝히기 보다 애매하고 모호하게 끝맺음해서 과연 범인이 누구인가? 범인은 어디서 부터 일을 벌인 것인가?를 다시 읽어보게 하는 작품들이다. 단편이라 구성이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지만, 모호한 결말은 읽고 나서의 여운을 길게 이어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