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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시대, 인간의 일 -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야 할 이들을 위한 안내서, 개정증보판
구본권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5월
평점 :
생각보다 가까이 다가온 로봇 시대, 인간의 일을 대신해 주는 로봇의 시대가 과연 반갑기만한지 의문이다. 산업 현장에서는 이미 자동화가 많이 진행 되어있고, 청소 로봇부터 애완 로봇에 이르기까지 우리들 일상 생활에도 로봇의 영향이 점차 커지고 있다.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할 로봇, 환영해야할 지 경계해야할 지, 인간과 로봇의 경계는 어떻게 유지되어야할 지 이 책을 통해 알아보자.
책은 12장으로 나뉘어진다. 1장 알고리즘 윤리학(무인자동차), 2장 언어의 문화사(자동번역), 3장 지식의 사회학(지식의 공유), 4장 일자리의 경제학(나의 일자리는?), 5장 인공지능 예술, 6장 여가의 인문학, 7장 관계의 심리학(로봇과의 연애), 8장 인공지능 과학(로봇의 위협), 9장 호기심의 인류학(생각하는 기계), 10장 인공지능 판사, 11장 망각의 철학(우리가 기억해야할 것), 12장 디지털 문법(코딩)이다.
도구를 발명하여 사용한 인간(호모 파베르)은 갈수록 똑똑하고 편리한 도구를 만들어낸다. 자율주행차, 기계 번역기, 온라인 지식 공유, 인간이 하는 거의 모든 일을 대신할 로봇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은 한정되어 있고 그들에게 부가 집중되는 현상이 벌써 일어나고 있다. 따라서 대량의 실직으로 인한 사람들에게 기본 급여를 제공한다 하여도, 노동없이 얻는 수입을 통해 인간이 만족할 지는 의문이다.
또한, 만들어는 놨으나 사용하면서 발생하는 사고에 대해 기계가 책임질 수는 없는 일이므로, 누가 책임을 져야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법적 합의도 이루어져야한다. 이를 테면, 자율주행차의 사고 발생 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매우 복잡한 문제다. 운전자, 차량 제조사, 부품공급업체, 운영체제와 소프트웨어업체, 지도 서비스업체, 통신 서비스업체 등 다양한 관계자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로봇과의 연애가 가능할까?는 흥미로운 질문이다. 영화<그녀>는 남자 주인공 시어도어가 개인비서 기능을 하는 컴퓨터 운영체제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다. 문제는 시어도어는 사만다와 감정적 소통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사만다는 아무 감정적 변화도 생길수 없는 구조로 설계되어있다. 그래서 그녀가 641명의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져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어도어는 충격을 받는다. 시어도어는 인간 여자와의 관계에서 상처를 입었기에, 자기를 잘 이해해주고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요구하지 않는 로봇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 편했을 것이다. 이러한 사랑은 지속가능한 것일까?
또한, 인간의 외로움을 위로해줄 로봇들이 생각보다 많이 출시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랍다. 2015년 일본에서 시판된 '페퍼'는 세계 최초의 '감정인식' 휴머노이드 로봇이고, 치매나 자폐증 환자 치료에 활용되는 반려로봇 '파로'도 있다. 미군 병사들은 자신들 대신 어려운 일을 해주는 군사용 로봇 '팩봇'에게 각별한 애착을 느낀다고 한다. 무엇보다 1999년 소니에서 발매된 '아이보'는 2014년 부품단종으로 사후서비스를 종결한다고 하자 아이보 주인들은 절에서 천도재까지 지내고 장기 기증 형태로 유지하였다고 하니 대단하다. 점차 상처주고 받는 인간끼리의 관계보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고 나아가 위로해주는 로봇과의 관계가 더 발달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스럽다.
미래의 일자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 로봇은 단순 노동업무만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직까지도 대체가능하다. 현재, 법무보조 서비스 로스는 초당 10억장의 판례 검토한다. 부동산권리분석 인공지능 프로그램 '로빈', 범죄수사에 사용하고 있는 '레이븐'은 모두 방대한 정보를 기반으로 뛰어난 분석력과 미래예측 능력만 아니라 인간의 오류와 한계를 보완해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알고리즘을 설계하는 사람의 주관적 요소가 다분히 들어가게 되므로, 차별과 편견이 알고리즘에 스며 들 수 있음을 주의해야한다. 또한, 컴퓨터 스스로 학습하는 머신러닝은 주어진 데이터의 한계 극복할 수 없다는 한계를 갖고 있으므로, 보조적인 요소로만 이용하고 판단은 인간이 해야하는 것이 옳다.
인류 문명은 세 차례의 커다란 지식구조변화를 겪었다. '문자의 발명'은 구전 대신 기록을 통해 지식을 전달할 수 있게 해 주었고, '인쇄술의 발명'은 지식을 널리 유통, 전승하게 해주었고, '인터넷과 디지털 기기'는 기억을 외장 두뇌에 의존하고 검색을 통해 정보를 인출하는 행위가 기억을 대신하고 있다(351-352). 이제 세 번째 지식구조변화의 시대 안에 살고 있는 현 인류는 좌뇌, 우뇌에 기억을 하지 않고 바깥에 있는 외뇌에 기억을 저장하려한다. 그러나, 우리의 사고와 판단은 내재된 기억을 통해서 가능하므로, 인간 고유 능력인 창의적이고, 성찰적이며, 공감하는 사고 능력은 편리하다는 이유만으로 외부에 함부로 맡겨서는 안된다.
인공지능, 로봇, 자동화와 인간의 관계에 관한 엄청난 정보를 잘 정리해 두었다. 언급하는 내용에 대한 자료와 숫자의 소스를 제시하고 있어서 신뢰가는 책이다. 로봇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지식을 원한다면, 이 책 한 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